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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달러 가치·금값 어떻게 되나

송평(松平) 2009. 10. 24. 20:06
美 달러 가치·금값 어떻게 되나
달러화 가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8월 초 이후 엔/달러 환율은 90엔대로 떨어졌고,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도 금융위기 발생 이후의 저점 대비 20% 가까이 상승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작성, 발표하는 '달러인덱스(유로·엔·파운드·캐나다달러·크로네·스위스프랑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평균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 1973.3=100 기준)'는 최근 75 내외로까지 하락,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지난해 3분기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달러 회피 현상이 나타나자, 장기적 관점에서의 달러 가치와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논란도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마크 파버, 누리엘 루비니 같은 비관론자들은 물론이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도 달러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한 미국 정책 실패를 질타하며 향후 기축통화 역할의 국제적 분할 가능성과 제3의 단일 기축통화 사용 방안 등을 조심스럽게 거론했다. 게다가 지난 10월 초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중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과 중동 산유국들 간 석유 거래대금 결제에 달러화 사용 중단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하면서 논란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향후 달러화를 비롯한 국제 환율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특히 최근의 달러 가치 하락세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국제 금값 추이는 달러화 붕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최근 달러 환율이 하락한 데에는 그것을 유발한 경제 여건, 즉 펀더멘털의 변화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통화로 자금을 조달해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 및 그 증권에 투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캐리 트레이드에서 자금조달 대상이 되는 국가의 통화는 자금이 국외 유출돼 약세 압력을 받는다. 2001년 3월 일본은행(BOJ)이 양적 완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2000년대 중반을 전후해 엔 캐리 트레이드가 성행했다. 그 결과 일본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엔화는 약세 흐름을 나타냈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 달러 하락 주범

현재 달러화가 처한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지난해 12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FRB는 연방기금금리 목표치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동시에 자금시장에서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양적완화 정책의 시행을 알렸다. 달러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실제로 달러 시장금리는 다른 통화에 비해 빠르게 하락세를 나타냈다. 지난 8월 중순 런던 은행 간 거래 금리인 리보 시장에서는 달러리보가 엔리보를 밑도는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확대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기에 향후 미국이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 등 가까운 시일 내에 정책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기대가 근래에 다소 힘을 잃고 있다는 점도 금리 차 거래에서 달러 약세를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다시 한 번 달러 가치 하락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른 통화들과는 달리 원자재 가격과 달러화 가치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주요 원자재 거래 시 기준통화로 달러화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즉 원자재 가격은 일차적으로 원자재의 수요와 공급이 결정하지만, 달러화가 약세를 나타내는 상황에서는 해당 원자재의 실질적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달러 표시 가격이 올라가기도 한다.

특히 최근 상품선물시장이 커지고 현물거래가 아닌 차액결제만 하면 되는 투자 목적의 거래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과 달러 환율에 대한 펀더멘털 요인이 반대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투기적 거래까지 가세하면서 가격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배럴당 150달러 수준이었던 원유 가격 이상 급등이 그 예다.

인플레이션 헤지 차원 금값 급등

이번에는 금이다. 금값이 달러 가치 하락과 강한 역관계를 나타내며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뉴욕, 런던, 싱가포르 등의 주요 상품시장에서 금값은 현물의 경우 온스당 1065달러, 12월 인도 예정인 선물 가격은 1070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10월 중 기록한 저점에 비해서는 50% 가까운 상승률을 나타낸 셈이다. 같은 기간 원유 가격은 20%가량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원유가 아닌 금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금 투자 수요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나타나는 금 수요의 증가는 인플레이션 헤지 의미가 강하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 등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낮추고 자금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늘렸다. 실물경제 침체를 완화시키기 위해 재정지출 규모도 크게 확대했다. 덕분에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아가고 경기 침체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가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수록 금융 및 재정 완화가 물가와 금리 상승 부담으로 돌아올 우려도 높다.

특히 올해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규모가 1조4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경우, 이런 부담을 향후 얼마나 성공적으로 감당할 것인지 여부가 미국 물가 및 달러화 가치에 직결되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오바마 정부에서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하는 것도 이런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최근 이스라엘과 호주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소폭 인상했다. 하지만 출구전략 논의의 전반적인 방향은 민간 부문의 경제가 충분히 되살아나지 못한 상황에서 조기 금리 인상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특히 내년쯤 국내외 경제에 더블딥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는 이제 막 되살아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명목국채와 물가연동국채의 금리 차에 반영된 향후 물가 상승 기대도 올해 들어 상승세이기는 하지만, 지난 수년 동안의 평균적인 수준보다는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년 세계 경제 '더블딥' 가능성

향후 경제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달러화의 점진적인 가치 하락과 더불어 기축통화 위상도 점차 약화될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주요국 금리 정책에 큰 변화가 없는 한 현재 나타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 또한 조기에 청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달러화 약세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은 데다 빠른 재정 건전화로 인플레이션 우려를 조기에 불식시키기도 어렵다.

하지만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로 가까운 시일 안에 달러 가치가 폭락하고, 기축통화 지위를 상실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같다.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유럽연합(EU)이나 일본에 비해 빨라 금리 인상 시기도 미국이 EU나 일본보다 늦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 가치 붕괴를 방지하려는 미국 등 국제사회 구성원들의 암묵적 합의와 이해관계도 광범위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금융위기가 완전히 해소되고 세계 경제가 다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당분간 달러화에 대한 신뢰 유지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선진국 간에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개도국의 미국 국채 보유와 원유 거래에서의 달러 결제 중단 또한 개도국 스스로의 이해관계가 있어 가까운 시일 내 쉽게 단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