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참역사연구

조선시대 첫눈오는 날엔 임금도 속였다

송평(松平) 2009. 11. 22. 13:17

조선시대 첫눈오는 날엔 임금도 속였다

 

첫눈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초등학교 시절 창밖으로 첫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수업시간인데도 웅성거린다.

엄격하기만 하던 호랑이 선생님도 이때만은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첫눈이 내리면 코트의 깃을 세우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첫눈을 맞으면서 서성거리면 무슨 소망이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에 젖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서설(瑞雪)을 주제로 한 노래도 많다.

노랫말에도 대개는 사랑과 소망을 담고 있다. 하기야 강아지도 눈이 내리면 컹컹 짖는다는데…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첫눈에 감회를 적시는 심정은 옛날에도 지금에 못질 않았다. 아니 더한 낭만에 젖었던 모양이다. 조선조 시대의 왕실에서는 첫눈이 오는 날에 한하여 임금을 속일 수가 있었다.

이른바 서양풍속인 만우절과 같은 날이 첫 눈 오는 날이었다. 서양의 풍속은 4월 1일을 만우절로 정해놓고 있는 까닭으로 이미 며칠 전부터 거짓말을 할 궁리를 한다.

날짜가 정해져 있기에 거짓말도 계획을 세우게 되었으니 멋도 낭만도 없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눈이 오는 날은 정해져 있지 않다.

게다가 거짓말도 단순한 것이 아니라 운치 있고 재미난 게임과 같이 했다. 첫눈이 내리면 그 눈을 종이에 싸거나 그릇에 담아서 상대에게 선물로 보낸다.

가령 공주가 아버지인 임금에게 보내기도 하고, 중전인 왕비가 사위인 부마에게 보내기도 한다. 그때의 구실은 무엇이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바마마, 겨울인데도 진귀한 과일이 들어왔기에 몇 개 올립니다. 거두어 주소서.""공주, 중국에서 비단이 왔구나. 옷을 지어 입도록 하라."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보내는 보따리의 부피는 아무리 커도 상관이 없으나 들어 있는 것은 반드시 첫눈이어야 한다. 승패는 눈 선물을 받은 사람이 지는 것이고, 보낸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기에 임금이 내리는 벼슬이나 하사품도 첫 눈이 내리는 날만은 퇴짜를 놓을 수가 있고, 반대로 임금에게 엉뚱한 구실로 첫 눈을 보내면서 승부를 걸어 볼 수도 있다.

평소와 같으면 중벌을 면치 못 할 일들이 첫눈이 내리는 날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선현들의 아름다운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과가 판명되면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소망을 말하고, 진 사람은 그 소망을 들어주어야 한다.

그 소망이라는 것도 대개는 대신들이나 상궁, 내시들에게 술상을 내리게 한다든가, 옷감을 내리게 하는 것 등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감을 듬뿍 담고 있다.

조선왕조와 같은 절대군주의 시대에, 또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인 기반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였던 시대에 임금에게 거짓말을 한다든가, 임금을 속였다면 대죄를 받아서 마땅하다.

그런데도 첫눈이 내리는 날에, 그것도 첫 눈으로만 임금을 속일 수가 있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지혜로운 풍속이던가.

왕실의 법도만큼 엄격한 것은 없다. 그 법도는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제약한다. 그와 같은 법도의 틀에 사람의 감정을 묶어놓으면 개성이 규격화되기 마련이다. 또 삶이 무미건조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규격과 틀을 깨는 것은 사는 일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게 된다. 첫눈이 오는 날을 만우절로 정한 것은 대단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지혜롭게 산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자유분방하게 사는 서양 사람들이 만우절을 정하여 놓고 하루를 즐기는 일과 조선왕조와 같이 엄격한 규범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첫눈이 오는 날을 골라 파격의 멋과 낭만을 즐기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역사가 사람의 일을 적는 것이라면 거기에 무슨 동서양이 있겠는가.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 그 해방감을 즐기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어도 생각은 모두가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운치와 덕담을 즐기는 일에는 우리의 선현들도 남 못질 않았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