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稼印)역학연구원

자연을 통한 공부

송평(松平) 2010. 4. 2. 09:21

자연을 통한 공부

         
  誠者 天之道요 誠之者 人之道라.
정성이 일심으로 뭉쳐진 것이 바로 자연의 법도이며, 그같은 일심의 정성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행동법도이다 - 중용에 나와있는 말이다.

 

천지 자연은 그 거대한 몸뚱이를 지금 이 시간에도 쉬임없이 움직이며 生長斂藏의 운동을 하고 있다. 그 끝없는 역동성으로 스스로도 생을 영위하며 만물을 낳고 흩으며 진화시키고 있다.

가장 자연친화적이라는 동양학. 동양학의 정수는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가?

동양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쉽다. 그러나 자아에 사로잡힌 일반인들은 그 자아를 극복하지 못하여 매우 어렵고 힘이 드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 뿐이다.

동양학은 지식을 쌓는 것이 우선은 중요하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따라서 먼저 공부를 많이 하여야 한다.
핵심을 짚지 못하면 평생 책 속에서 헤매다 죽을 것이요, 정수를 깨달으면 10년이면 족하다.

공부가 어느정도 무르익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입을 다물어야 한다.

 

입을 다물고 자연을 통해 지식과 자연현상을 합치시켜야 한다.
그 기간이 가장 답답하다. 지식은 지식대로 자연현상은 전혀 별개
로 보이는 것이다. 짧게는 3년정도라도 입을 다물고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자연을 통해 복습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어떻게 되는가?
사람이 교만해지고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上昇의 道와는 멀어지고 말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말을 지껄이는 로보트와 같아진다.

자연을 통해 복습한 후에는?

다시 책을 붙잡고 모든 글의 내용을 추상화시켜 자연현상과 다시 연결시킨다. 그 과정을 통해 죽어있던 모든 문자들은 생명력을 얻어 눈앞에서 완벽하게 살아나게 되며 책의 저자와 비로소 시공을 초월한 혼연일체의 상태로 마음이 통하여 그 저자가 무엇을 達觀의 경지로 썼고 또 무엇을 橫觀의 경지에서 쓴 것인지 속속들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라야 만이 비로소 제대로 동양학의 기초를 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니, 그 경지는 끝이 아니라 비로소 큰 공부로 들어가기 위한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자연을 통해 仁義禮智信을 길러야 한다. 즉, 德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파리 한마리를 살릴 때에는 왜 살려야 하는지, 또 파리 한마리 죽이는 때에도 왜 죽어야 하는지 천지의 덕에 합치되도록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배고프고 힘들때도 불평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히 하고 타인 때문에 내가 피해를 받게 되어도 도리어 그를 궁휼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노력해나갈때 비로소 추상화된 코드체계인 역학이 심정적으로 다가오게 되며 理通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연은 우리 인간의 영원한 부모이며 스승이다.
자연을 통해 우리는 좁아터진 마음을 열어 재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