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박 대통령 어린시절 보낸 집 모델 재현

2009. 8. 24. 12:11가인풍수지리·음택과양택

 이사진은 이 명박 대통령의 고향집터에서 촬영한것으로  이 명박 대통령의 선대가

 이곳에서 11대를 거쳐 살던 곳이다. (약 300년 )

 

좌측 : 사랑채가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서 귀향하여 살던 곳이다.

중앙 : 안채는  이 명박 대통령의 조부님이 거처 하시던 곳이다.

         이곳에서 6.25때 폭격으로 인해  동생과 누님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우측 : 사랑채는 이 명박 대통령의 삼촌이 살던 곳으로   1971년 까지 이곳에서 살았던 곳이다.

 

 

 

李대통령 살았던 집터 주인 이인학·이영두씨 부부
불과 열흘전 농부에서 졸지에 이 대통령 기념품 판매소 사장으로 변신한 이인학씨 내외가 고향집터에 대한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불과 열흘전 농부에서 졸지에 이 대통령 기념품

판매소 사장으로 변신한 이인학씨 내외가 고향집터에

대한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고향집터 주인 이인학씨 마당 안내판에 부착된 1971년 겨울 당시 이 대통령 집 정경일부. 오른쪽 건물이 사랑채. 하지만 2005년 신축돼 옛 자취는 모두 사라지고 합성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이명박 대통령 고향집터 주인 이인학씨 마당 안내판에 부착된 1971년 겨울 당시 이 대통령 집 정경일부. 오른쪽 건물이 사랑채. 하지만 2005년 신축돼 옛 자취는 모두 사라지고 합성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이명박대통령이 어린시절 잠시 살다간 고향집터의 현재모습.
이명박대통령이 어린시절 잠시 살다간 고향집터의 현재모습.
심봤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덕성1리) 538번지.

집주인 이인학씨(70). 솔직히 지난 해 12월18일 밤 '이명박 대통령 후보 당선 확정'이란 문구가 TV를 통해 확인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런 독백을 한 것도 사실이다. 2002년 이명박 대통령이 제32대 서울시장이 됐을 때만 해도 자기 집을 '해묵은 더덕' 정도로 생각했다. "그땐 일반 관광객은 방문하지 않았다. 주로 풍수 관계자들이 1주일에 한두 팀 이씨 집을 방문하고 이 대통령 선조 묘소를 구경하고 돌아갔다."

물론 부부는 자기 집이 언론에 대서특필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부터 이 집은 '귀하신 몸'이 된다. 하루 수천명의 관광객이 물밀듯이 들이닥치면서 이씨는 자기 집이 더덕에서 '산삼' 수준으로 신분이 격상된 걸 실감한다.

이 집은 이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몇년 머물렀다. 엄격히 말해 생가터는 아니고 성장한 집이다. 이 대통령의 선조가 내리 300년 이 집에서 살았다. 1971년 3월 집 소유권이 바뀐다. 사촌형 내외가 현재 집주인 이씨에게 팔고 이웃으로 이사간다. 6·25 때 이 집은 폭격을 당해 안채는 거의 허물어지고 후에 밭으로 방치되고 사랑채와 바깥채만 남아 있었다. 이씨 부부는 2005년 집을 새로 짓는다. 예전 안채 자리에는 27평짜리 단층 양옥이 신축된다. 그로 인해 이 대통령이 살던 예전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우물터와 안채 주춧돌 정도밖에 없었다. 관광객을 위해 울산에 사는 이씨의 장남 희환씨(46)가 한달 전쯤 자비로 71년 당시 집 사진 두 장을 확대 합성, 안내판에 붙여놓았다.


#"몇몇 부동산업자들이 집 팔라고 하는데…그래도 우리 배 불리자고 무작정 팔수 있나"

고향집터?·고향집?…그참 헷갈리네

요즘 관광객들이 덕실마을 관광정보센터 직원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 고향집터와 고향집의 차이점을 설명해달라는 것.

덕실마을 정보에 무지한 관광객들은 두곳 모두를 생가로 안다. 이 대통령이 태어난 데는 일본 오사카이다. 이 대통령이 성장한 곳은 바로 이인학씨 댁. 그런데 사촌형이 이 집을 팔고 마을 윗쪽으로 이사를 갔다. 현재 사촌형수 류씨만 혼자 사는 집은 명절 때 한번씩 들르기 때문에 '고향집'으로 명명된다. 물론 예전에 오래 살았지만 아무 연고가 없는 이씨 집은 '고향집터'로 불린다. 이상득 한나라당 부의장이 그렇게 교통정리를 해줬다. 물론 고향집 앞에 사람이 더 많이 붐빈다. 기념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 실물크기의 사진이 붙어 있는 이 대통령 마네킹이 3개가 서 있다. 집 마당에는 추억의 사진까지 전시돼 있다. 자연 고향집터는 고향집에 비해 인기가 덜할 수밖에 없다. 이씨로서는 좀 섭섭한 맘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 당선됐을 때만 해도 세간의 관심이 자기 집으로 몰렸다가 불과 나흘만에 고향집이 더 유명해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부부는 "고향집터와 고향집을 떠나 이 마을에서 대통령이 태어났고 그로 인해 새로 먹고 살 거리가 생겼으니 그것으로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라며 덕담을 한다.


#"하루에 1천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드니 어쩔 수 없이 농업을 포기했습니다."

농가였던 집이 기념품 판매소로…

이인학씨의 장남 희환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향집터 관광객 맞이하는 일과 농사를 동시에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친은 아파 거의 실내에서 소일한다. 어쩔 수 없이 관광객을 맞아 안내하는 일은 모친의 몫. 이 집은 농사로 먹고 살아왔다. 고향집터가 명소로 바뀌면서 생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희환씨는 이 대통령 취임 직후 안채 옆 창고를 기념품 판매소로 활용한다. 주로 기념 로고가 새겨진 1천원짜리 볼펜, 열쇠고리, 연필통, 수건 등 기념품을 판다. 한동안 우사에 5마리의 소가 있었다. 소똥 냄새가 옥에 티였다. 지난 달 28일 그들의 운명을 바꾼 관광객을 만난다. 군위에서 소를 키우고 사는 한 관광객이 소 때문에 고민하는 걸 보고 즉석에서 "임금집에 살던 복 소를 내가 사겠다"고 흥정을 시작했다. 하루 만에 소가 처분된다.

고향집터라지만 별다른 지원은 없다. 다만 예전 우물터 자리에 고향집터란 표지석을 포항시에서 세워줬단다. 요즘 울산에 사는 삼남매가 번갈아 가면서 어머니를 도우러 온다.

-땅값이 많이 올라갔는데 타인에게 팔 의향은 없는가?

"청와대 관계자가 우리 집을 다녀가고, 몇몇 부동산 업자가 매매 타진을 해왔다. 하지만 사람은 경우와 염치가 있어야 한다. 우리 집은 보통 집이 아니다. 우리 배 불리자고 타인에게 팔지는 않겠다."

농부에서 관광안내업자로 변한 이씨 부부, 비록 영천이씨지만 점점 자기도 모르게 이 대통령가의 또 다른 친척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집터 주인 이인학씨 어떤 변화 있었나…
-하루아침에 명소로 부상
-하루 관광객 1천명 몰려
-최근 안채 옆 창고 개조
-기념품 판매소로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