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부활] 30~40대 중산층 북촌에 필 꽂히다
16일 오후 찾아간 북촌한옥마을은 고즈넉했다. 늦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초봄의 눈부신 햇살이 공존하는 가운데 차도 사람도 바쁠 것 없다는 듯 한가로이 지나치고 있었다. 한옥 기와지붕과 담벼락이 낮게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마치 시간의 흐름을 저 멀리 비껴간 듯한 모습이다. 북촌한옥마을은 서울 시내 대표적인 한옥 밀집지역으로 경복궁과 덕수궁 사이 소재한 가회동, 계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일대 107만여 ㎡를 일컫는다. 백악산과 응봉산이 연결된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고 저멀리 남산이 내다보여 명당 중 명당으로 꼽히는 이곳은 현재 역사문화미관지구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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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가 없는 편이에요. 매물도 나온 것이 별로 없고 사려는 사람도 많지 않고…" 이날 방문한 가회동 대성부동산 관계자는 매매가 뜸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개발 호재가 없다보니 투자수요가 모이지 않아 거래가 별로 없을뿐더러 시세 변화도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가회동, 계동 일대는 3.3㎡당 700만~1000만원 선에 거래됐다"며 "2002년 전후로 매년 집값이 10% 이상 올라 2007년에는 2002년에 비해 거의 두 배가 넘게 뛰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름세가 꺾였고 거래 자체가 없다보니 시세는 2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라고 덧붙였다.
자리를 옮겨 계동 소재 P공인중개소에 들렀다.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현재 매물로 나온 것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P공인 관계자는 "계동 소재 대지면적 201.6㎡에 건평 115.7㎡ 방 5개짜리 집이 17억원 선, 가회동 소재 대지면적 112.4㎡에 방 3개짜리가 6억8000만원 정도에 나와 있다"며 "이 밖에 현재 매물로 나와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고 전했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일대 집값은 수년째 정체 상태다. 외환위기 사태가 진정되고 월드컵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2002년 이후 전국 부동산 가격 급등에 편승해 이곳 역시 집값이 많이 올랐다. 하지만 별다른 개발호재가 없다보니 2007년 전후 상승세가 꺾인 것.
시세는 원서동과 계동 소재 주택이 3.3㎡당 2000만~2500만원 선이다. 가회동과 삼청동은 이보다 높아 2500만~3000만원 선에 거래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대권주자 시절 거주했던 가회동 31번지는 3.3㎡당 3500만원 전후로 일대에서 가장 높은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이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한옥마을이라면 종로구 청운동, 효자동 일대 '서촌'은 요즘 주목받는 한옥밀집구역이다. 인왕산과 경복궁을 잇는 58만2297㎡ 일대 서촌은 얼마전 서울시에서 북촌에 이어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받았다.
이에 따른 기대 덕분에 요즘 효자동 인근에서는 한옥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효자동 D공인 관계자는 "최근 2년간 일대 한옥 시세는 3.3㎡당 1800만~2000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며 "원래 거래가 많이 없는 곳인데 최근 한옥보존지구로 지정을 받으면서 주택 소유자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효자동은 앞서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받은 가회동, 계동 일대와 비교해 수리가 된 집이 별로 없어 구입 시 집수리를 염두에 둬야 한다.
북촌한옥마을에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과거 한옥마을의 주거주계층인 노년층들이 생활여건이 좋은 경기도 일대로 빠져나가고 있고 그 빈자리를 한옥에서의 전통적인 삶에 매료된 30~40대가 채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젊은 층들은 지하철 이용이 편리한 3호선 안국역 역세권 일대를 선호한다.
안국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최근 문의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30~40대 전문직 종사자들"이라며 "아파트에서의 삭막한 삶에 지친 이들이 한옥에서의 조용하고 한적한 삶을 위해 입주 문의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이 부족하다보니 전세로 들어오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물건이 거의 없어 전세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수리된 82.6㎡ 전세금이 2억원 선이다.
북촌 한옥마을에서도 집값이 비싼 축에 속하는 가회동 11ㆍ31번지는 널찍한 마당을 갖춘 한옥들이 즐비하다. 이 중 몇 집은 주말 별장용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주중에는 비어 있다고 한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몇 개 주택의 경우 소유자가 강남에 거주해 주중에는 비어 있고 주말에 별장용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옥은 아파트와 달리 일정 규모 마당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집 크기는 예상보다 작을 수 있다. 중개업자들에 따르면 북촌한옥마을의 경우 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비중은 대략 60% 선이다. 한옥의 미래는 어떨까. 투자대상이라기보다는 실수요 측면에서 접근하는 편이 낫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먼저 투자대상으로서의 매력은 계속 하락세다. 서울시에서 북촌에 이어 서촌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하고 각종 개발은 억제한 채 한옥만 들어서도록 하는 등 한옥 원형 보존을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건립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투자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요 측면에서는 꾸준하게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한옥이 온돌과 마루를 갖춰 자연친화적인 냉ㆍ난방이 가능하고 황토, 나무, 한지 등 천연재료로 만들어 '웰빙'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민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고 한다.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는 "한옥은 보편적인 부동산 투자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환금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부 방침 또한 원형 보존에 맞춰져 있으므로 소유자 마음대로 개조할 수 없어 수요도 많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김 전무는 이어 "하지만 가회동, 삼청동 등 한옥마을은 서울 도심에 위치한 전원주택 성격을 띠기 때문에 한적하고 조용한 삶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수요 측면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