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

2010. 7. 23. 10:45가인풍수지리·음택과양택

강태공 1

()나라 문왕(文王)과 만남.

지금으로부터 약 3,100여 년 전. 중국 황하(黃河)의 물줄기를 따라 이어진 위수(胃水)라는 강가에서 백발 의 수염을 휘날리며, 3년째 낚시질을 하는 노인이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세월동안 피라미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 터라 사람들로부터 무위도식 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낚싯대를 붙들고 있는 그 노인은 옷자락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누덕누덕 꿰매져 있는데 그나마 깔끔한 기색마저도 전혀 없어 그저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노인에 불가 할 뿐이었다. 한편 주나라를 건설하여 새로운 인재를 찾고 있던 문왕(文王)은 여러 방면으로 지혜와 경륜이 있는 훌륭한 인물을 물색했으나 모두가 그만 그만할 뿐 특출한 현인(賢人)을 찾지 못했다. 그 당시는 국가 가 하늘 일이나 나라의 모든 일을 판단할 때 무엇보다 역()에 의한 판단을 중요시하던 시기였으므로 역의 논리를 더욱 체계화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로 인하여 소위 주역(周易)이 생겼던 것인데 인재를 찾지 못해 대단히 고민을 하는 문왕을 안타깝게 여긴, 주역팔괘에 능한 한 신하가 괘를 뽑아보더니, "위수라는 강가를 가게 되면 백발노인이 있는데, 이분이 천하 를 다스릴 경세가(輕世家)라는 정단(正斷)이 내려졌사옵니다." 라고 임금께 아뢰었다. 문왕은 그 신하가 정 해준 날, 정해준 시간에 많은 신하들과 함께 위수강가로 나갔다. 강가에 가서 보니 황량하게 드넓은 강가는 오히려 황무지나 무주공산(無主空山)처럼 적막감만 들었지 막연할 뿐으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경세가(輕 世家)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헛된 소리라고 생각됐다. 오직 하나 겨우 눈에 뛰는 것은 저 쪽 강변에서 삿갓을 푹 내려쓰고 앉아 있는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노인뿐이었다. 신하들은 그 노인에게로 다 가가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보였다.

문왕은 웬지 막연하고 답답한 생각이 들어 오던 길로 서서히 되돌아 나가면서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오게끔 한 신하가 은근히 미운 생각마저 들며, 애당초의 경세가를 만나겠다는 목적을 단념해 버리고는 넓은 황야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한 신하가 다가와, "경세가를 만나보시옵소서." 라고 주청을 했다. 문왕은 귀가 번쩍 띄이며, "! 그래. 우리가 찾던 경세가가 있단 말이요." 하며 크게 기뻐하며 신하의 안내로 강가 로 다가간 문왕은 큰소리를 쳤다. "이보세요. 경들은 나를 도대체 무엇으로 알고 이따위 행동들을 하오." 그러자 한 신하가 문왕 앞에 엎드려, "저기, , 낚시하는 노인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던 인재입니다. 만나보시옵소서." 문왕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일국(一國)의 왕()이 보잘것없는 한낱 낚시꾼을 경세가라고 만난다는 그 자체가 우스꽝스런 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바다 속에 들어있는 신비의 구슬을 알 수 없듯이 사람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는 생각에 일단 그 낚시꾼에게로 바싹 다가서서 먼저 아는 체를 하고는 곧바로 예의를 올렸다. 사실 문왕의 그 같은 처신은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한 나라의 임금이 그것도 처음으로 보는 행색이 초 라한 노인에게 많은 신하들이 바라보는 가운데서 큰절을 올린다는 것은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납득하기 어 려운 일이었다. 문왕으로부터 큰절을 받은 노파는 낚시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더니 문왕에게 정중 한 답례를 올렸다. 그리고는, "이 늙은이는 강여상(姜呂尙)이라고 합니다. 할 일 없이 허송세월만 보낸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들은 나를 보고 태공망(太公望: 무한정 바라만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라고 말하자. 문왕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여상이란 사람은 하늘의 뜻을 알고 땅의 기 운을 헤아려 도술(道術)에 능하다는 소문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문왕도 소문의 그 장본인을 한번 만나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항시 갖고 있던 터였는데, 그 바램이 우연찮은 기회에 오늘 이 자리에 현실로 나타난 것은 무 척 다행스런 일이었다.

문왕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강여상에게 앞으로 자기를 돌봐줄 것을 간청했고 이에 강여상은 흔쾌히 응낙을 했 다. 그러자 문왕은 강여상의 도량을 다소나마 가늠하기 위해서, "낚시를 하실 때 어떤 생각으로 하십니까? 그리고 낚시에도 경륜이 필요하신지요?" 문왕의 이 같은 질문에 강여상은, 낚시 밥을 크게 던져주면 큰 고 기가 물리고, 작게 던져주면 작은 고기만 물리지요." 라고 하자 문왕은 크게 감동하였다. 강여상이 하는 이 야기는 바로 제왕인 자신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로 크나큰 포용력이 있게 되면 큰 인물을 만날 수 있고, 또 다른 각도에서는 만조백관들에게 후한 녹()을주게 되면 사사로운 정치보다는 큰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 으로 받아들여 이해했기 때문이다. 문왕은 곧바로 강여상을 왕사(王師)로 등용하였고, 강여상은 이름대신 태공(太空)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훗날에는 제나라를 건설하여 시조가 되기까지 많은 경륜으로 어려운 난 국은 해결했다.

강태공 2

천하를 낚은 강태공. 당대의 최고 무능력자라고까지 손가락질을 받았던 강태공이 문왕으로부터 왕사로 등 용되자 온 장안이 떠들썩하게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태공의 명성은 날로 더해 가고 그러는 동안 세월은 흘러 강태공이 등용 된지 7-8년이 되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험준한 산봉우리 5-6개를 축지법의 도술로 단숨에 넘어 산수가 수려한 기암절벽에 앉아 있는 강태공의 눈에 산봉우리 아래 산등성이에서 소복 차림의 여인이 손으로 땅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다 싶어 마치 융단을 타고 날아가듯 가벼운 몸짓으 로 여인이 있는 바로 근처 숲 속까지 다가가 내려앉았다. 산봉우리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을 따름이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여인은 땅을 치며 통곡하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 희한한 것은 무덤 속에 들어 있는 맹인을 원망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 대성통곡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여인은 울음소리가 커지며, "아이고 이놈의 영감탱이야, 나는 어찌하라고 그런 유언을 남겼어. 아이고 원통해라!" 한참을 바라보고 섰던 강태공이 그 여인에게로 다가가, "여보시오, 부인. 무슨 까닭에 그다지도 슬피 우시오?" 강태공의 이 같은 말이 몇 차례 반복되자 여인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 며 강태공을 힐끗 쳐다보았다. 여인의 얼굴은 둥근형으로 쉽게 드러날 만큼의 미색을 갖추었다. 강태공은 깊은 산 속에서 여인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처지였지만 그래도 여인 혼자 깊은 산 중에서 울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 말못할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곡의 연유를 조심스 럽게 물어보기로 마음먹고 그 까닭을 하나하나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인은 강태공의 겸손한 태도가 믿음직했는지 울음을 멈추고 조용한 어조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 이 무덤은 6년 전에 죽은 남편인데, 이 괴짜 남편이 마지막으로 유언하기를, ` 내 무덤에 풀이 나지 않으면 재혼을 하고 만약 풀이 무성하면 독수공방을 하더라도 재혼하지 말고 과부로 살아가라`는 말을 남기고 세 상을 떴습니다." 그러자 강태공은, "그러면 이렇게 무덤에 풀이 왕성하니 순리대로 혼자서 살아가시지 통곡 할 필요가 뭐 있는지요?" 여인은 강태공 이야기가 서운하다는 듯이, "사람이 어디 그래요. 어쩌다가 한 남 정네를 알았는데, 그만 깊은 정이 들어 재혼해서 그동안 이루지 못한 달콤한 삶을 영위하자고 약속했으나, 그래도 옛 영감의 유언이 생각나 와 본 건데 이렇게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니 이러도 저러도 못하고 울고만 있답니다. 여인의 그 같은 말은 원망과 절규에 가득 차 있어 무덤에 풀만 없다면 금방이라도 재혼 하겠다는 속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강태공은 다시 그 여인에게, "금년 나이가 몇이요?" 하고 묻자, 그 여인은 조금은 귀찮은 듯 큰 소리로, "? 마흔 하나요, 마흔 하나." 여인의 그 같은 퉁명스런 목소리에도 강태공은 껄껄 웃으며, "아니, 왜 이 렇게 큰 소리를 치십니까. 누가 보면 둘이 싸움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그까짓 것 따지게 생겼어요. 내 코가 석자인데." 여인의 감정이 가라앉고 이성을 되찾을 무렵 강태공 은 그 여인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는 당신을 희롱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고 세상 남자들이 여자들만 보면 희롱하려고 애쓰지만 나는 오로지 당신을 돕고자 하니 아무 오해 마시고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도와 줄 수가 있는지 말해보오." 이 말에 그 여인은 귀가 번쩍 띄어 자신도 모르게 강태공의 손을 덥석 잡으서, "그 러면 선비님께서 내가 재혼할 수 있는 비방(秘方)이라도 갖고 계신단 말이오?" 그러면서도 이내 여인은 실 망한 듯, "아니 이 무덤에 풀을 없애기라도 할 수 있는 신선이라도 된단 말이오? 그럴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 나를 무엇으로 도와줘요?" 여인의 경솔한 언행에도 불구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 강태공은, "내가 이 무덤의 풀은 없애 줄 테니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오?" 여인은 의아하다는 눈초리를 하면 서도 다시 재혼을 할 수 있다는 욕심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만 해주면 그러겠다고 했다.

강태공은 그 여인에게 정북쪽을 향하여 정중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숫자를 냅다 하나에서부터 셋까지만 세어 나가라고 말했다. 여인은 강태공이 시키는 대로 자세를 갖춰 바르게 앉고는 강태공의 말에 따라 온 산천이 떠내려가도록 큰 소리로, "하나, , ."하고 외쳐댔다. 그런 외침에 무슨 신묘함이라도 깃들었 는지 마지막 셋 하는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무덤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나면서 주위가 금방 어두컴컴한 세계로 변했다. 여인은 너무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서 정신이 잠깐 몽롱해졌다. 그리고 하얀 연기가 가시고 정신이 들자 주위를 둘레둘레 살펴보던 그 여인은 어리둥절했다.

방금 전까지 곁에 서 있던 선비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그렇게 풀이 무성하던 무덤도 풀 하나 없 이 빨간 흙무덤으로 변해 있지 않은가. 여인은 아까 그 선비가 정녕 신선(神仙)이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언행이 경솔했다며 , "아이구 신선님! 고맙소이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동서 남북을 향해 엎드려 공손히 절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강태공은 자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만 써 오던 기문둔갑(奇門遁甲:음양과 오행을 응용한 도술)이란 기상천외한 도술(道術)로 그런 조화를 부려 무덤의 풀을 없앴던 것이다. 여인은 깊은 산중에서 너무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무섭기도 하고 뒷일을 생각하면 즐겁기도 한 엇갈림 속에서 정신을 가다듬은 여인은 우선 얼굴이나 씻고 집엘 가야겠다는 생각으 로 그 무덤에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올렸다. "여보, 영감탱이. 당신이 말한 대로 당신의 무덤이 이렇게 뻘 건 대머리가 되었으니 나는 시집을 가야겠소. 아이고, 아이고, 슬퍼라!" 이러한 인사를 마치고는 부리나케 내려오는데 수백 척이나 되는 폭포가 있어 세수를 하려고 두 손을 모아 물을 떠올리려는 순간 깜짝 놀라 뒤 로 넘어질 듯했다. 그리고는, "에그머니, 저게 뭐야! 아까 그 선비님 아닌겨!"그랬다.

수백 척이나 된 폭포수 절벽에서 그 여인의 모습을 보고있던 강태공의 모습이 물 그림자로 나타났던 것이다. 여인은, "아이구, 신선님!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절 받으시지요." 하고 몸을 엎드려 일어선 순간 또 한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절벽에 앉아 있던, 그 신선이 어느새 허공의 바람 을 타고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후, 그 여인은 뜻한 바대로 재혼할 수 있었 고 남은 여생 또한 행복하게 마칠 수 있었다.

강태공 3

부인, 수고하십니다. 강태공은 산중의 여인과 작별한 이후, 잠깐 왕실을 들러 문왕과 국사를 논하고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낮에 있었던 여인과의 이야기를 부인에게 들려주었더니 부인이 화를 벌컥 내면서, "여자가 한번 결혼해서, 남편이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무슨 놈의 재혼을 하옵니까?" 라며 그 여인을 힐책하고 자신의 남편인 강태공에게도, "그런 부정(不淨)스러운 여인을 무엇 하러 도와 주었어요." 라고 하며 눈을 흘기며 언설을 높이었다. 이 같은 부인의 말에 강태공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인이 하 는 말이 당연했고 재론의 여지 또한 없었다.

강태공은 마음 속으로 그렇게 말하는 부인이 믿음직스러워 여간 기쁜게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릇에 담긴 물과 같이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어 인심조석변(人心朝夕變)이라 한 옛말이고 보면 열녀같이 말하는 자기 부인도 자신이 죽으면 낮의 그 여인과 다를 바, 없겠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그 날 저녁 강태공은 잠자리에 들면서, "아까 낮에 내가 도술을 부리느라고 기()를 너무 많이 빼앗겨서 그런지 피로하오." 하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부인은 여느 때처럼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뜬 강태공은 여느 때 같으면, 도술로 마을 앞 산봉우리를 단숨에 왕래했을 텐데 그렇지 못 하고 겨우 일어나 등청하는 정도였다. 그러기를 10여 일, 강태공은 급기야 자리에 눕고 말았다. 일국의 왕 사자가, 그것도 도술로 유명한 강태공이 몸져누워 있으니, 한나라의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정 무렵에 온 방을 누비고 다니며, 입에서 선혈(鮮血)을 뿜어대면서 몸부림을 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 여금 안타까운 심정을 불러일으켰다. 새벽까지 그렇게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고통을 겪다가 강태공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강태공이 죽자. 조문객은 셀 수없이 많아 줄을 이으니, 장례를 유월장(踰月 葬), 즉 달을 넘겨 장례를 치르는 독특한 장례법(葬禮法)으로 치르라는 임금의 어명이 내려졌다. 이러하니, 주나라 방방곡곡에서 강태공의 부음을 받고 모인 많은 조문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하루, 이틀도 아닌 무려 한 달이 넘는 긴 장례 기간에 상주(喪主)인 강 태공 부인은 여러 조문객 중에 시자(侍者)를 데리고 다 니는 용모준수한 쾌남(快男)과 맞절을 하는 중에 이상스럽게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그 쾌남에게 끌려 들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자기 남편인 강태공이 아닌 다른 남자에 대해서 옆 눈질 한번 해보지 않았던 자신이, 그것도 하늘과 같은 남편의 상중(喪中)에 마음을 끄는 남자가 있다는게 도저히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으나, 마음은 오로지 그 쪽으로만 끌려 비록 상중이었지만 그 남 자의 시자를 통해서 몇 번 만나게 되고 결국 동침까지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밀월관계는 점점 깊어져 이 젠 장례만 치르고 난 후엔 같이 살자고 언약까지 하였다. 그러는 동안 한 달이 넘어 마침내 장례일이 다가 왔다.

장례를 마치고 나면, 그 쾌남이 더 이상 강태공의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할 명분이 없어지자. 두 사람은 죽은 강태공을 염하여 입관(入棺)하는 틈에 장례를 치르고 나서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의논을 하는 도 중에, 갑자기 그 쾌남이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지는 게 아닌가. 두 손발을 마치 사시나무 떨 듯이 달달달 떨 면서 입에서는 거품을 뿜어내는 폼이 금방 죽을 것 같은 참상이었다. 깜짝 놀란 강태공 부인은, 시자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니, "우리 주인님은, 간질(癎疾)이란 천하에 몹쓸 병이 있어 가끔 이렇답니다." 라고 말해 줬다. 그러자 강태공 부인은 시자에게 "이럴 때면 무슨 약을 쓰느냐?" 고 묻자 시자는, ", 마님. 이럴 때는 주로 사람의 두개골(頭蓋骨)을 먹으면 쾌차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 두개골이 다 떨어졌으니 큰 낭패입 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태공 부인은 뭔가 결심한 듯, "그러면 죽은 사람 두개골도 되느냐?" 고 물었 다. 그러자 시자는, "그럼요. 산사람 두개골이 전쟁터가 아니고서야 어디 있나요. 전쟁이 있을 경우는 소인 이 몇 개 주워 다가, 잘 보관하여 약으로 쓰곤 했지만 요즘은 강태공이란 분이 차원 높은 경륜으로 임금을 보필하여 태평성대다 보니 버려진 두개골이 어디 그렇게 있어야지요?" 시자의 이 같은 이야기를 듣고만 있 던 강태공 부인은, "잠시만 기다려라." 하며 밖으로 나갔다.

방에서는 관을 막 들고나와 마당에 놓고서 상여채비를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관을 붙 잡고 목을 놓아 통곡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완전히 이성을 잃은 강태공 부인은 시퍼런 도끼를 한 손에 들고 관 옆으로 다가와 모든 사람들을 잠시 물러나게 하였다. 조문객들은 잠시 숨을 죽이고 상주인 강태공 부인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한 손에 아무리 날카로운 도끼를 들었을 망정 이렇게 비통한 상중 인 데, 뭔가 할 말이 있겠지 하고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강태공 부인은 자신이 서 있는 주위가 좁다며 약간씩만 더 관 곁에서 물러서라고 부탁하고서는 들고 있던 도끼자루를 두 손으로 멀찌감치 잡고서 머리 위로 올려 강태공의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을 향하여 힘껏 내리쳤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관이 쪼개지는 게 아니고, 탱 하고 오히려 도끼가 튀어버리는 것이었다. 순간적이나마 여러 조문객들은, "으악, 저게 웬 변고냐?"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강태공 부인은 반사적으로 도끼를 다시 내려치려고 머리 위로 바싹 올리고는 힘껏 내리치려는 순간 바로 뒤에서, "부인, 수고하십니다." 라고 어디 서 많이 들어본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런 기겁할 일이 일어났다. 한달 전에 죽어서 입관까지 마친 강태공이 눈앞에 턱 버티고 서 있는 것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 던 강태공이 그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자. 조문객들이 술렁댈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강태공 부인은 홍당무 가 되어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에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조문객 중에는, "저년!, 죽여야 한다." 고 외쳐대는가 하면 포악한 욕설들이 마구 쏟아졌다. 강태공 부인은 이렇게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그것도 엄연한 남편 상중에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한 용서받지 못할 천하에 부도덕한 패륜녀(悖倫女)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강태공은 껄껄 웃음을 지으면서 엎드려 있는 부인의 턱을 한 손으로 받쳐들고는, "수고하셨소." 하고 먼저 말을 건넸다. 그러자 부인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하며 애걸복걸 통사정을 하였지만, 이내 모든 것이 끝나버린 강태공은 다시 껄껄 웃으며, "그렇다면 부인 내가 시키는 대로하시오. 매 마른 땅 위에 물 한 동이를 부어 단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다시 물동이에 담는다면 용서해주겠소." 라고 단호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목을 매 죽 으라는 엄포보다도 어려운 명령으로 한번 내뱉은 말에 책임지지 못함을 나무라는 뜻이었다. 부인은 그 길로 뛰쳐나가 물에 빠져 자결을 하고 말았다. 강태공은 부인의 "한 여자가 한 남편을 섬기면 그만이지 재혼이 무슨 놈의 재혼이냐" 며 자신은 남편이 죽더라도 절대 재혼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는 호언장담에 그렇게 현 숙한 자신의 부인이라면 과연 어떠한 유혹과 고난에서도 절개를 지킬 수 있는가를 도술로 시험해 본 것이 었다. 강태공은 마음 속으로 돈과 권력, 그리고 갖가지 유혹 앞에서 무한히 연약한 게 인간의 마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강태공은 이렇게 하여 조강지처와는 사별하고 강태공 자신은 훗날 백일승천을 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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