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20. 14:18ㆍ고증·참역사연구
나주 반남 고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일본 倭' 아닌 '한국 倭'
3∼6세기 나주 일대에 존재했다
이덕일·이희근 역사평론가
식민사관에 따른 ‘임나일본부’를 뒤집는 학설이 제기돼 역사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역사서, 삼국사기 등에 등장하는 ‘倭’는 일본이 아닌 한반도에 존재한 정치세력이었다는 것. 나주 반남 고분을 통해 고증한 ‘잃어버린 왕국’의 이야기.
경주나 부여·공주의 유적에 익숙한 사람들, 그래서 남한의 고대 유적은 신라와 백제, 그리고 가야가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은 전남 나주 영산강 유역의 반남이란 작은 면 일대에 산재한 고분(古墳)들을 본다면 커다란 충격을 받을 것이다. 나주군 반남면 자미산 일대에 산재한 30여 기(基)의 반남 고분군은 한국 고대사에 남겨진 최대의 비밀이다. 이 지역이 백제 영토였으니 부여·공주의 고분보다 작으리라는 예상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일단 그 엄청난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덕산리 3호분의 경우 무덤의 남북 둘레가 46m이고 높이가 9m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간단한 한쪽짜리 보고서의 내용도 당시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보고 먼저 움직인 것은 고고학계가 아니라 도굴꾼들이었다. 보고서 내용 중 ‘금동관·금동신발, 칼과 도끼’ ‘귀고리· 곡옥(曲玉)· 관옥(管玉)· 다면옥(多面玉)’ 등은 이들의 모험심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출처 : 월간중앙 1999. 3월호 |
언덕같은 무덤..나주 반남,복암 고분 | |
번호 : 995 글쓴이 : 겨울이야기 |
조회 : 83 스크랩 : 0 날짜 : 2006.01.21 0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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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반남고분 전경 |
'일본 倭' 아닌 '한국 倭'
3∼6세기 나주 일대에 존재했다
이덕일·이희근 역사평론가
식민사관에 따른 ‘임나일본부’를 뒤집는 학설이 제기돼 역사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역사서, 삼국사기 등에 등장하는 ‘倭’는 일본이 아닌 한반도에 존재한 정치세력이었다는 것. 나주 반남 고분을 통해 고증한 ‘잃어버린 왕국’의 이야기.
경주나 부여·공주의 유적에 익숙한 사람들, 그래서 남한의 고대 유적은 신라와 백제, 그리고 가야가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은 전남 나주 영산강 유역의 반남이란 작은 면 일대에 산재한 고분(古墳)들을 본다면 커다란 충격을 받을 것이다. 나주군 반남면 자미산 일대에 산재한 30여 기(基)의 반남 고분군은 한국 고대사에 남겨진 최대의 비밀이다. 이 지역이 백제 영토였으니 부여·공주의 고분보다 작으리라는 예상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일단 그 엄청난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덕산리 3호분의 경우 무덤의 남북 둘레가 46m이고 높이가 9m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간단한 한쪽짜리 보고서의 내용도 당시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보고 먼저 움직인 것은 고고학계가 아니라 도굴꾼들이었다. 보고서 내용 중 ‘금동관·금동신발, 칼과 도끼’ ‘귀고리· 곡옥(曲玉)· 관옥(管玉)· 다면옥(多面玉)’ 등은 이들의 모험심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출처 : 월간중앙 1999. 3월호 |
언덕같은 무덤..나주 반남,복암 고분 | |
번호 : 995 글쓴이 : 겨울이야기 |
조회 : 83 스크랩 : 0 날짜 : 2006.01.21 0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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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반남고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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