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어느 날 오후
상담 오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시달리다가 날씨 탓인지 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옷만 현대 옷을 입었지 가름한 듯 뽀얀 듯해서 동양화 속의 미인 같이 생긴 깔끔하게 쪽진 여학생이 친구들과 상담실로 들어왔다.
첫 인상으로 봐서 분명 무당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잘 맞히는 백무당.
丁巳 乙巳 丁酉 乙巳 사주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영락없이 귀족 무당 사주였다. 사주에 닭이 든 사람은 꿈을 잘 꾼다. 그래서 첫마디가 "꿈을 잘 꾸고 조상덕이 있으며 예리하고, 예민한 사람이다." 라는 정도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사람에게는 "당신은 핸드폰 없이도 공간의 소리를 듣고, 텔레비젼도 볼 수 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러지 않아도 얼마 전에 잠깐 졸다가 텔레비전 내용을 그대로 봤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친구들과 사실이다. 아니다. 약간의 논쟁을 하고 있던 참이라고 했다. 나도 왜 그 사람에게 하필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상담을 하면서 집중을 하다보면 상담을 온 사람과 주파수가 딱들어 맞을 때가 있다. 그때는 아주 구체적인 내용까지도 그대로 들어맞는데 영각이 어느 정도 열린 사람과는 특히 교감이 잘 된다. 물론 나의 컨디션도 있지만. 이 학생이 텔레비젼을 본 것은 사실이다. 아직 인간의 뇌파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인간의 두뇌는 공간의 파장을 분명히 잡아낼 수 있다. 단지, 그 파장을 잡아내는 범위가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리고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단어로 표현될 뿐이다. 가령, 옛날 무당들은 신명을 불러낸다고 하지만, 요즘은 신명을 부른다고 하지 않고 주파수를 맞춘다고 한다. 그 방법에서도 옛날에는 굿을 했지만 요즘은 자신의 음악 세계에 빠져들거나 다른 취미생활에 몰입함으로써 그 주파수를 맞추어낸다. 그러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립될 때 쯤 해서 이 여학생이 상담을 왔는데 나도 모르게 그 학생에게 만화 같은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학생은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 아르바이트로 중고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집이 예술가 집안이기는 하지만 가난해서 큰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친구가 연주하기로 되어있던 공연장에 다른 친구들과 놀러갔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연주하기로 된 친구가 나오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대신 피아노를 치게 되었는데 기립박수까지 받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프랑스 음악가에게 재능을 인정받아서 유학까지 가게 되어있다고 한다.
옛날 무당들의 일을 크게 보면 영적인 능력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에 든 병을 고쳐 주는 것이었는데, 현대에 와서는 직업이 분화되면서 무당사주들은 대개 몸을 고치는 의료계로 가거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예술인, 종교인으로 가거나 한다. 그 여학생은 예술인으로 간 경우이며, 조상의 도움으로 기회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
위 사주는 단란하게 가정을 꾸며서 행복하게 잘 살려고 하면 평범하거나 오히려 시름시름 앓으면서 평균이하의 생활을 하게 되지만, 결혼보다는 음악가로서 예술혼을 불태운다면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줄 것은 틀림없다. 그녀의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가 하얗게 눈 덮힌 고요한 세상에 퍼져나가는 것 같다. 지금, 당신의 뇌 주파수는 어느 채널에 맞추어져 있는가요. 혹시 시정잡배와 같이 고루한 것에 고정되어 있지는 않은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