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상류의 가을길… 내게 욕심을 버리라하네
2009. 9. 25. 11:22ㆍ가인자료·靈淸·詩와 Tag
섬진강 상류의 가을길… 내게 욕심을 버리라하네
섬진강은 웅숭깊다.
남한에서 4번째로 큰 물줄기인 섬진강. 전북 진안군의 고원에서 시작된 강은 호남의 첩첩 산들이 고아 낸 맑은 물들을 한데 모아 들과 산을 휘돌아 흐른다. 다른 큰 강과 달리 섬진강은 그리 큰 들이나 마을을 거느리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자연을 품은 섬진강의 물길을 쫓았다. 500리 긴 강물의 여정 중 이번에 찾은 구간은 섬진강의 발원지에서 전북 순창군 장구목까지다. 다른 큰 하천과 만나 큰 물길을 이루기 전의 섬진강 상류, 풋내 그윽한 아름다운 강변을 만나는 길이다.
■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
남한에서 4번째로 큰 물줄기인 섬진강. 전북 진안군의 고원에서 시작된 강은 호남의 첩첩 산들이 고아 낸 맑은 물들을 한데 모아 들과 산을 휘돌아 흐른다. 다른 큰 강과 달리 섬진강은 그리 큰 들이나 마을을 거느리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자연을 품은 섬진강의 물길을 쫓았다. 500리 긴 강물의 여정 중 이번에 찾은 구간은 섬진강의 발원지에서 전북 순창군 장구목까지다. 다른 큰 하천과 만나 큰 물길을 이루기 전의 섬진강 상류, 풋내 그윽한 아름다운 강변을 만나는 길이다.
■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
↑ 가운데 크고 깊은 구멍이 난 장구목의 요강바위.
↑ 시인이 걷는 길에서 만난, 백로가 노니는 호젓한 강 풍경.
↑ 용암리 석등.
↑ 구담마을의 느티나무 언덕에서 내려다본 섬진강의 풍경.
↑ 섬진강은 큰 들이나 도시 대신, 아기자기한 자연과 마을을 품고 흐른다. 섬진강 사람들의 눈물이 고인 옥정호 위로 한 척의 조각배가 지나고 있다.
섬진강의 시작점은 데미샘이다. 팔공산 자락, 천산데미(1,080m)란 봉우리 아래에 있는 샘이다.
진안군 백운면의 원신암마을 위에선 선각산 자연휴양림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휴양림 관리동까진 차로 오를 수 있다. 여기서 데미샘까진 1.19km다.
'인디언 서머'(북아메리카에서 한가을부터 늦가을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기간)인지 꽤나 뜨겁게 내리쬐는 가을볕을 받으며 길을 올랐다. 절반쯤 왔을 때 이정표는 숲길로 안내했다.
'인디언 서머'(북아메리카에서 한가을부터 늦가을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기간)인지 꽤나 뜨겁게 내리쬐는 가을볕을 받으며 길을 올랐다. 절반쯤 왔을 때 이정표는 숲길로 안내했다.
숲 속은 짙은 초록으로 청량했다.
가파르지 않은 길 끝에서 만난 데미샘. 함께 오른 일행은 샘의 규모가 너무 작아 "토끼가 세수하러 오는 옹달샘"이라고 했다.
가파르지 않은 길 끝에서 만난 데미샘. 함께 오른 일행은 샘의 규모가 너무 작아 "토끼가 세수하러 오는 옹달샘"이라고 했다.
샘물 한 바가지 떠서 목을 축였다. 섬진의 첫물은 더 없이 상쾌하고 시원했다.
진안군 성수면의 풍혈냉천을 지나며 찬바람에 움츠러들던 강물은 전북 임실군으로 접어들며 사선대란 경승지를 일궈 낸다.
4명의 신선이 놀았다던 곳이다. 임실군에서 어찌나 반듯하게 큰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는지 옛 경승지다운 고즈넉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도시의 중앙공원을 찾아온 듯 널찍한 잔디밭과 조각공원, 각종 체육시설 등이 사선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휘휘 도는 강물은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에서 보물을 훑고 지난다. 보물 267호인 용암리석등은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석등 중에서 2번째로 크다고 한다.
4명의 신선이 놀았다던 곳이다. 임실군에서 어찌나 반듯하게 큰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는지 옛 경승지다운 고즈넉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도시의 중앙공원을 찾아온 듯 널찍한 잔디밭과 조각공원, 각종 체육시설 등이 사선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휘휘 도는 강물은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에서 보물을 훑고 지난다. 보물 267호인 용암리석등은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석등 중에서 2번째로 크다고 한다.
들판 위에 석등 하나 외로이 서서 푸른 하늘을 이고 있다. 강물도 이곳을 스칠 땐 더욱 고요해진다.
■ 옥보다 아름다운 옥정호
석등을 지난 강물은 금세 넓어지고 깊어진다. 섬진강댐이 가로막은 강물은 옥정호란 큰 호수를 이룬다. 임실군의 강진, 운암면과 전북 정읍시 산내면에 걸쳐져 있는 265㎢의 넓은 호수다.
이른 새벽 옥정호는 그 아름다움을 좇아 온 사진작가들로 북적인다. 옥정호 사진 포인트는 붕어모양으로 생긴 외안날섬을 내려다 보는 국사봉전망대다. 연봉의 파노라마에 갇혀 소담스럽게 담긴 호수 한가운데 기묘하게 생긴 섬 하나가 떠 있다.
1961년 섬진강댐이 만들어진 건 산 아래 펼쳐진 만경, 김제평야에 물을 대기 위해서다. 이제껏 모인 섬진강물 대부분이 제 강줄기를 따라가지 못한 채 파이프를 타고 샛길로 빠져나간다. 옥정호가 담은 물의 일부만 원래 제 강줄기를 따라 흘러 내려간다.
정읍시 산내면의 섬진강댐 밑으로 개울처럼 흐르는 강물. 섬진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실낱같은 물길을 이어간다.
■ 섬진강 시인이 걷는 길
이 물길이 구림천 등과 만나 제법 강물의 모양으로 흐르는 곳이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메마을 앞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나고 자란 곳이다. 시인은 이곳에서 주변의 산과 들, 나무와 풀을 노래해 왔다. 시인이 '서럽도록 아름답다'고 했던 강변이다. 마을 앞 강물은 여전히 맑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마을의 한가운데 기와를 곱게 올린 집의 문패를 보니 '김용택'이란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건물 한쪽엔 '관란헌(觀瀾軒)'이란 이름의 서재도 있다. 아쉽게도 서재의 문은 닫혀 있었다. 시인이 계셨으면 물 한잔 얻어 마시려 했는데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진메마을에서 강 따라 이어지는 천담마을까지 4km 구간은 시인이 예전 천담분교로 출·퇴근하던 코스다. 시인이 '이 십 리 길이야 말로 천국의 길'이라며 '눈곱만큼도 지루하지 않고 순간순간 계절계절이 즐거웠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고 했던 길이다.
천담마을까지 이어진 이 길은 '시인이 걷는 길'이란 이름으로 깨끗이 정비돼 있다. 비포장의 길은 걷기에도 좋지만 차로 천천히 달리기에도 무리가 없다. 속도를 내지 않고 달리다 보면 섬진강의 서정에 푹 빠지는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천담마을에서 계속 강을 따라 달리면 구담마을이다. 마을의 느티나무 언덕에서 바라보는 강 풍경이 일품이다. 자연스러운 물굽이가 굵은 느티나무 가지를 프레임 삼아 그림처럼 펼쳐진다.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이야기하라면 바로 이곳을 꼽을 수 있겠다.
■ 장구목 요강바위가 건네는 이야기
여기서 강 건너편은 순창군 땅인데 거기엔 싸리재가 있다. 싸리재의 회룡마을을 지나면 기묘한 암반이 강을 가득 메운 장구목이다. 경북 청송군의 백석탄처럼 오랜 시간 강물이 깎아낸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강의 바닥을 이루고 있다.
이중 '요강바위'라는 이름의 특별한 돌덩이가 있다. 강변에 있는 표지판에는 도둑들이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이 바위를 부잣집 정원석으로 팔려고 훔쳐 갔다가 주민들이 어렵게 다시 찾아왔다는 사연이 적혀 있다.
강의 암반 위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요강바위를 찾을 수 없어 강변의 장구목가든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부엌에서 칼질을 하다 나온 안주인에게 요강바위가 어디 있는 거냐 물었더니 되레 그 바위를 왜 보러 왔느냐고 되묻는다.
서울에서 시집와 이곳에 터 잡은 지 17년이 넘었다는 이정순(49)씨는 "요강바위뿐 아니라 주위의 바위들 모두 쉽게 볼 수 없는 자연의 빼어난 작품입니다. 요강바위의 큰 구멍은 아마도 돌이 하나 움푹한데 들어가 계속 물살을 타고 돌면서 지금처럼 깊은 구멍을 만들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고 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강물이 빚은 조각에 대한 이씨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 인적이 끊긴 시간에 요강바위 앞에 서면 소쩍새 소리, 숲 소리, 물소리가 하나로 엉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명상에 잠긴 듯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이씨는 "우리도 요강바위처럼 속을 비워 놓고 있다면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담을 수 있을 텐데, 다들 제 속을 욕심스레 꽉 채우고만 있으니 신비로운 자연을 느낄 수 없는 겁니다. 요강바위를 도둑맞았다 찾은 신기한 바위로만 보지 말고 그 구멍에 담긴 자연의 이치를 봐야 합니다."
섬진강은 강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 옥보다 아름다운 옥정호
석등을 지난 강물은 금세 넓어지고 깊어진다. 섬진강댐이 가로막은 강물은 옥정호란 큰 호수를 이룬다. 임실군의 강진, 운암면과 전북 정읍시 산내면에 걸쳐져 있는 265㎢의 넓은 호수다.
이른 새벽 옥정호는 그 아름다움을 좇아 온 사진작가들로 북적인다. 옥정호 사진 포인트는 붕어모양으로 생긴 외안날섬을 내려다 보는 국사봉전망대다. 연봉의 파노라마에 갇혀 소담스럽게 담긴 호수 한가운데 기묘하게 생긴 섬 하나가 떠 있다.
1961년 섬진강댐이 만들어진 건 산 아래 펼쳐진 만경, 김제평야에 물을 대기 위해서다. 이제껏 모인 섬진강물 대부분이 제 강줄기를 따라가지 못한 채 파이프를 타고 샛길로 빠져나간다. 옥정호가 담은 물의 일부만 원래 제 강줄기를 따라 흘러 내려간다.
정읍시 산내면의 섬진강댐 밑으로 개울처럼 흐르는 강물. 섬진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실낱같은 물길을 이어간다.
■ 섬진강 시인이 걷는 길
이 물길이 구림천 등과 만나 제법 강물의 모양으로 흐르는 곳이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메마을 앞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나고 자란 곳이다. 시인은 이곳에서 주변의 산과 들, 나무와 풀을 노래해 왔다. 시인이 '서럽도록 아름답다'고 했던 강변이다. 마을 앞 강물은 여전히 맑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마을의 한가운데 기와를 곱게 올린 집의 문패를 보니 '김용택'이란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건물 한쪽엔 '관란헌(觀瀾軒)'이란 이름의 서재도 있다. 아쉽게도 서재의 문은 닫혀 있었다. 시인이 계셨으면 물 한잔 얻어 마시려 했는데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진메마을에서 강 따라 이어지는 천담마을까지 4km 구간은 시인이 예전 천담분교로 출·퇴근하던 코스다. 시인이 '이 십 리 길이야 말로 천국의 길'이라며 '눈곱만큼도 지루하지 않고 순간순간 계절계절이 즐거웠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고 했던 길이다.
천담마을까지 이어진 이 길은 '시인이 걷는 길'이란 이름으로 깨끗이 정비돼 있다. 비포장의 길은 걷기에도 좋지만 차로 천천히 달리기에도 무리가 없다. 속도를 내지 않고 달리다 보면 섬진강의 서정에 푹 빠지는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천담마을에서 계속 강을 따라 달리면 구담마을이다. 마을의 느티나무 언덕에서 바라보는 강 풍경이 일품이다. 자연스러운 물굽이가 굵은 느티나무 가지를 프레임 삼아 그림처럼 펼쳐진다.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이야기하라면 바로 이곳을 꼽을 수 있겠다.
■ 장구목 요강바위가 건네는 이야기
여기서 강 건너편은 순창군 땅인데 거기엔 싸리재가 있다. 싸리재의 회룡마을을 지나면 기묘한 암반이 강을 가득 메운 장구목이다. 경북 청송군의 백석탄처럼 오랜 시간 강물이 깎아낸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강의 바닥을 이루고 있다.
이중 '요강바위'라는 이름의 특별한 돌덩이가 있다. 강변에 있는 표지판에는 도둑들이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이 바위를 부잣집 정원석으로 팔려고 훔쳐 갔다가 주민들이 어렵게 다시 찾아왔다는 사연이 적혀 있다.
강의 암반 위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요강바위를 찾을 수 없어 강변의 장구목가든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부엌에서 칼질을 하다 나온 안주인에게 요강바위가 어디 있는 거냐 물었더니 되레 그 바위를 왜 보러 왔느냐고 되묻는다.
서울에서 시집와 이곳에 터 잡은 지 17년이 넘었다는 이정순(49)씨는 "요강바위뿐 아니라 주위의 바위들 모두 쉽게 볼 수 없는 자연의 빼어난 작품입니다. 요강바위의 큰 구멍은 아마도 돌이 하나 움푹한데 들어가 계속 물살을 타고 돌면서 지금처럼 깊은 구멍을 만들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고 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강물이 빚은 조각에 대한 이씨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 인적이 끊긴 시간에 요강바위 앞에 서면 소쩍새 소리, 숲 소리, 물소리가 하나로 엉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명상에 잠긴 듯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이씨는 "우리도 요강바위처럼 속을 비워 놓고 있다면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담을 수 있을 텐데, 다들 제 속을 욕심스레 꽉 채우고만 있으니 신비로운 자연을 느낄 수 없는 겁니다. 요강바위를 도둑맞았다 찾은 신기한 바위로만 보지 말고 그 구멍에 담긴 자연의 이치를 봐야 합니다."
섬진강은 강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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