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3. 17:12ㆍ가인역학원·가인명품작명·가인풍수원
살의 삼각(三角)구조 | | | 신살 |
살의 삼각(三角)구조
살의 원천이라고 할만한 선천성의 업살(業煞)과
자기념살(自己念煞)
그리고 빙의로 인하여 생기는 타령살(他靈煞)이
어떤 형식으로 관련을 맺으며 상호작용을 하는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본다.
업살
자기념살 △ 타령살 --- (가념살, 빙의살, 반사살)
* 살의 삼각구도 *
(1) 업살과 자념살(自念煞) / 업이 만든 살과 자기 마음의 살
(2) 자념살(自念煞)과 타영살(他靈煞) / 자기 마음의 살과 다른 영혼의 살
(3) 업살(業煞)과 타영살(他靈煞) / 업으로 인한 악인연(惡因緣)이 만드는 살
(4) 살의 삼각(三角)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유형의 사례
위에 열거한 제목들로 자세한 설명을 하기로 하겠다
전통적 의미의 살
살은 한자어로 살(煞)이라고 쓰고 '죽일 살'이라는 훈을 붙여쓴다.
국어 사전에서는 살의 낱말 뜻을 "사물의 해로운 빌미가 되는 힘과 기운"이라고 정의 내린다.
다시 말해서 이를 의미론적으로 보자면 '어떤 불가사의한 위해요인'인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한자어의 살은 두 가지로 표기를 달리 하는데 또 하나가 흔히 쓰이는 살(殺)이란 용어이다.
이것 역시 죽인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 두 가지의 표기를 면밀히 분해하여 해석해 보겠다.
우선 殺을 파자하여 해석해 보자.
왼쪽에 X와 나무 목(木)이 있고 오른 쪽에는 어떤 일을 나타내는( ,又)이 들어간다.
한자어에서의 X란 칼질을 한다는 뜻이며, 밑에 있는 나무는 생명을 가리킨다.
따라서 살이란 글자를 동사적인 의미로 쓸때는 살인(殺人), 살생(殺生), 살신(殺身)등의 용례로
나타내고, 관형사적인 사용례로는 살기(殺氣), 살푸리 등으로 쓰인다.
다음으로 한자 표기에 煞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이것은 좀 특이한 면이 있다.
이 글에는 주술적인 냄새가 짙게 깔려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를 파자 해석해 보면 둥글 월변에 무엇인가를 불로 태운다는 의미를 가진 형상이 왼쪽에 들어있다
따라서 이는 부적이나 기타 어떤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물건을 사용하여 염력을 가하거나
신의 힘을 차용한다는 강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가 있다.
왼쪽 윗 부분 즉 아래 화(火)을 제외한 부분은 허수아비의 형상이며 일종의 제웅을 뜻하고,
그 아래에는 불화(火)가 들어서 태운다는 뜻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제웅을 태워서 상대를 죽인다는 의미의 상형문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형문자로서의 煞이라고 하는 글자는 모양새 그대로 주살(呪殺)을 나타내는 문자임이
확실하다
현대적 의미의 살
살의 전통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위의 문자 분석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런 고전적 의미만 가지고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병을 앓게 된 경우, 그 전날 상갓집에 다녀온 일이 있으면
무당들은 다른 것을 알아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저, "상문살(喪問煞)"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살에 대한 개념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규격화 표준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처리방식이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저 상갓집에 문상을 다녀왔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살이 끼었다는 단정을 내릴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처리함으로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을지는 몰라도 정확도에 있어서는
대단히 불비한 것이다.
살을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한다면 "인생에 불행을 가져올 가능성을 지닌 대단히 위험하면서도
그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원인 불명의 위해요소"라고 정의 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조들의 지혜라고 할 수 있는 살의 개념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지혜로 발전시켜서 이에 대비하고 불행을 막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불시의 사고, 아무리 노력해도 잘 낫지 않은 원인 불명의 질병, 24시간 꾸준히
노력하기를 수십년간 계속해도 언제나 그 타령인 불운의 연속, 이러한 불가시 불가량의 불행은 역시
그 무엇인가 살(煞)이 작용하는 까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더 포괄적으로 살에 대한 기본 지식을 익혀서 그것을 방지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업이 만든 살과 자기 마음의 살
업살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살이므로 현실에서 과거세의 경험한것과 비슷한 상황에 자기가 처하면
다시 그 일을 반복하게 만드는 성질을 갖는다. 이는 거의 운명적으로 나타난다.
이 때 자기의 염(생각)이 일상적으로 그런 행동에 대하여 큰 저항이 없는 경우, 또는 오히려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강한 집착을 갖고 있을 때는 업살이 쉽게 현실로서 드러나 가지고 살이 되고 만다.
그것은 아주 고약한 습관과 같아서 좀처럼 자기의사로 고치기 어려운 중독성이 있다.
예를 들어서 전생(前生)에 대단히 이름 난 난봉꾼이었던 사람이 현세에서 어떤 여자로 환생했을 때,
친구의 꼬임을받아 남자친구와 어울려 놀 기회가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남자와 탈선하는일을 벌인다
무슨 까닭에 그렇게 되는가 하면 과거세로부터 이어지는 영혼의 습관이 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생의 업이 아무리 두껍게 형성되어 있다 하여도 자기의 사고와 가치관, 행동양식이
올바로 정립된 경우는 쉽게 악행에 물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심심하면 칼을 가지고 벽에 던져 꽂는 놀이를 즐긴다고 생각해 보자.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살아가기에 스트레스가 쌓여 푸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은 그 마음을 들여다 보면 열등감이 가득하여 누군가의 머리나 심장을 겨누는 심정이다.
표적에다가 맞추는 명중률이 점점 올라가고 드디어 프로선수에 가까운 실력을 갖추었을 때,
마침 부부싸움이 벌어졌다고 치자.
그래서 엉겁결에 화가 난 것을 못 참아 옆에 놓인 칼을 부인에게 던졌는데 이마에 명중했다면 그런
기현상이 바로 살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살인 미수혐의를
벗어나기 힘들다.
왜냐하면 "칼을 던지면 사람이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형법상의 미필적 고의가 숨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행스레 과실 치상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이와 같이 불행한 일이 우리의 주위에서 이따금 벌어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추세라 하겠다.
본의 아니게 상대방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행위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해내는 사람은
자기념살을 가진 사람이며, 대체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업살(선천살)도 갖고 있다.
그의 과거세를 영시(靈視)해 보면 역시 그럴만한 짓을 했던 사람이 많다.
사주(四柱) 네 기둥을 잘 들여다 보면 아주 고약한 살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양인살이라든가, 백호살과 같은 남을 해치기 쉬운 살이 들어난다.
그러나 본인이 그러한 타고난 잔인성을 그냥 억제하지 못할 경우는 문제가 되나 이를 잘 소화시켜서
다른 것에 쏟으면 앙화를 면할 수가 있다.
내 친구 중에 지금 영동에서 성형외과 의사로 성공하여 많은 여성의 얼굴을 떡 주무르듯이 고쳐내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나에게 보통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한 일이 있다.
"나는 한 일주일만 사람의 피를 보지 않으면 뭔가 맹숭맹숭해서 기분이 불쾌해진다.
이게 내 천성에 맞는 일인가 보다. 수술을 하면 자르고 꿰매고 하여 피가 흐르지.
그걸 보아야 나는 보람을 느낀단 말이야."
소름 끼치는 말이지만 나는 그의 전생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잘 알수있다.
그는 전생에 겪은 일을 지금도 하고있다.그는 전생에도 서양에서 그일을 하였고 조금 잔인한 성격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진실로 받아 들여진다.
그리고 여러분이 누구라 하면 모두 잘 알만한 사람인데 지명수배를 받아 숨어 살고있는'고문경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기술적으로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내는 일 같은 것은 숙련도가 높다고
해서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타고난 잔인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보기에는 숨어 다니는 그도 역시 조선시대에 무고한 죄인을 붙잡아 놓고 모진 고문을 가하던
그 사람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는 의금부 취조관이 다시 환생하여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본다.
성형외과 의사를 하는 내 친구는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마음 수양으로 그런
업살을 많이 해소하였으니 그 정도이지 만약 그냥 아무런 믿음도 없었다면 지금쯤 어찌 되었을지
궁금하다.
더구나 업살이 많은 사람은 작은 실수를 저질러도 큰 상처를 내어
상대방으로부터 고소를 당한다든지 하는 불상사가 자주 일어난다.
자칫하면 본인도 모르게 악행을 익히고 악인으로 전락해 버리는 일이 생긴다.
나는 이 현상을 가리켜 <악업과 악념의 상승작용>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상승작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으면 영락없이 단 한번의 실수가 그대로
평생의 업이 되어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이는 더할 나위 없이 불운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그냥 "운이 나빠서 그랬다. 재수가 없어서 그랬다"는 식으로 넘겨서는
곤란하다.
이와는 반대로 살이 감소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무리 조악한 환경에 몸을 담고 살아도 전생에 악업을 쌓지 않았거나, 악업을 쌓았다 할지라도
이생에서 마음의 수양을 쌓은 사람은 <선업과 악념의 상쇄작용, 또는 악업과 선념의 상쇄 작용>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어느 날 갑과 을이라고 하는 두 사람이 강도짓을 하려고 예비음모를 꾸미게 되었다고 가정해 본다.
을은 종범으로서 갑이 시키는대로 칼을 들이대고 돈을 내어 놓으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상대가 돈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갑은 "찔러 버려!" 하고 명령했다.
그런 다음에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을이 칼자루를 쥐고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은 상대를 찌르지 못하고 떨구어 버린다.
이럴 경우에 사람들은 을이란 사람이 성격이 모질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견이다. 사실은 을이 과거세에서 그런 짓을 한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저 일순간의
꾀임에 빠진 것이기에 도저히 그는 자신의 영혼이 명령하지 않는 가해행동을 해낼수가 없는 것이다.
이때 참지 못하고 있던 갑은 을의 칼을 바닥에서 주어 가지고 상대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야 만다.
을이 멍청하게 그냥 있으니 오히려 상대가 덤벼들까 두려워서 그랬다고 나중에 변명한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다. 사실은 갑의 마음에는 악념이 가득차 있고 그 악념이 과거의 악행을
되살리는 작용을 서슴치 않고 일으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범행을 저지르는데는 차이가 없지만
갑에게는 <악업과 악념의 상승작용>이 일어난 것이고,
을에게는 <선업과 악념의 상쇄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어째서 악념과 악업을 누적시켜서는 안되는가가 명확해진다
빙의살 귀신에 씌어 생기는 살
앞에서는 업과 상념의 살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이제부터는 자기의 념이 타인의 영체나 아니면 귀신의 영혼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거기에서는
어떤 살이 발생되는가에 대하여 검토해 본다.
자념살과 타령살 사이의 관계에는 두가지의 기본적인 발생 형식이 있다.
가) 빙의살(憑依煞) : 귀신에 씌어 생기는 살
빙의살이란 다른 영체가 어떤 사람의 영혼에 접근하여 영적인 장애를 일으켜서
그것이 살로 작용하는 경우를 말하며,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귀신 씜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빙의살은 대체로 질병과 재난을 유발한다.
악념,패배념,원한념이 자신에게 작용하여 자념살이 형성된 상태에서는 다른영혼의 침입이 용이하다
이것은 악업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것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서 못된 생각에 젖어서 살게 되면 저절로 그런 상념에 젖은 악귀가 따라온다는 말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오므로 마치 그들의 목소리는 자신의 마음이내는 소리로 착각이들 정도이다
빙의된 사람은 평소에 보이지 않던 이상성격을 노출시킨다.
이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악념에 가득 찬 본인의 마음을 완전히 통제하고
강력한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말 그대로, 무엇엔가 씌인 상태로 미친듯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갖가지의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 다닌다. 얼핏 보면 정신병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사고와 판단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는 듯이
보이므로 그 구분이 참으로 애매모호한 특징을 가진다.
빙의살은 영능력자들이 다루는 중요 과제이다.
본인이 번역 출간한 바있는 '대영계씨리즈 1 권'은 주로 빙의에 관계된 문제를 다룬 것이므로
자세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참고해 보기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를 보충 설명해 주고 싶다.
자기념에 살이 없는 사람은 좀처럼 빙의령의 살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욕심이 없는 사람은 사기꾼의 농간에 걸려들지 않는 것과 비유할 수있다.
예컨데 요즘 불량 비디오를 청소년이 많이 본다고 해서 사회문제로 되고 있다.
청소년이 보면 안된다가 아니라 어른도 보아서는 안된다가 정도(正道)이다.
어른이 보면 괜찮고 아이들이 보면 안된다고 해 놓으니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그런 포르노테이프를 보면 순간적으로 커다란 자극을 받아서 정신이 돌아버릴수가
있다.그래서 악한 상념을 가지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떠돌던 영혼의 빙의를 받게 되어서 성범죄가
늘어 나는 것이다.
귀신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귀신이 아귀령과 색정령이다.
아귀령(餓鬼靈)은 허욕을 채우기 위하여 나쁜 사람에게 빙의해서 사기, 공갈, 강절도 등의 재산범을
만들지만, 색정령(色情靈)은 성에 굶주린 귀신인만큼 빙의상태로 강간을 저지르게 만든다.
나는 며칠 전에 전후 베이비 붐 세대의 범죄율이 무척 높다는 기사를 읽고 한가지 느낀 일이 있다.
1955년부터 1960년초 까지의 출생률이 대단히 높다.
이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약 2년에서 7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시대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그들 세대에게서 다른 세대에 비하여 무슨 까닭에 범죄율이 높게 나타날까 하는 의문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런 결과 나는 아주 흥미로운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2년8월28일 각 일간지 참조요망)
* 전쟁은 많은 유령을 도처에 출몰하게한다 / 유계에서 떠돌기 때문이다.
* 유령은 환생하거나 태아에 빙의한다 / 생에 대한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 전후세대는 대체로 궁핍하게 어린 시절을 산다 / 욕구불만이 많다.
그렇다면 위의 3가지의 조건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는 명확해진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 영혼이 전쟁통에 죽은 영혼일 가능성이 많고,더불어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태아령에 죽은 영혼들이 많은 장애를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다가 전후에 헐벗고 굶주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므로 아무래도 다른 세대들보다는
영적으로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재산범이 많고 그 중에서도 사기범이 많다는 것은 이점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전쟁중에 죽은 아귀령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사회심리학자의 의견을 빌리자면, 전후세대는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교육적인 면에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유아기와 소년기를 거치면서 형성되는 인간의 기본성향이 나빠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면은 분명하지만 나의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영적인 빙의나 환생의 문제가 더 클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이한 사항은 위에 해당되는 전후세대는 영적 수련이 가장 필요한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종교라든가 심신수양을 혹시 기피하는 편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자못 걱정이 된다.
<원한령 이야기> "씨를 말려 놓을 거야"
역사상으로 나타난 원한령의 장애 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사례를 한가지 소개 하겠다.
조선왕조 500년이란 방송 드라마에도 이미 소개된 사실이나 나중에 장조(莊祖)로 추존된 사도세자
(思悼世子)의 의대증(衣帶症)은 바로 이와 같은 영적 장애에 의하여 생긴 병이다.
사도세자는 궁중의 세자로서 체통을 지키는 일을 대단히 싫어했고 그런 이상행동 가운데 두드러진
것이 궁중복식을 무조건 기피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대증이란 정해진 예복을 입으려 하면 갑자기 전신에 경련과 발작이 일어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증상인데 요즘으로 치면 '의복 기피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신질환이다.
그런데 사도세자의 출생배경을 살펴보면 그의 영적인 장애 요인을 알 수 있다.
숙종의 아들이며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英祖)는 대단히 기가 센 인물로서 역사상으로도 상당히
많은 치적을 쌓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조는 자신의 어머니가 숙종의 후궁이었던 사실에 대하여
언제나 자신의 혈통에 대한 열등감을 가졌던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영조의 아버지인19대 숙종은 누구나 잘 알고있는 장희빈(張嬉嬪)의 원망과 사랑을 함께받은
인물이다.워낙 다정다감하고 호색하던 사람이라서 숙종은 궁중애사라고 할만한 장희빈과 그 일족에
대한 사사(賜死)사건까지 보게 된다.
이처럼 숙종조에서 기사환국과 갑술옥사등 남인과 소론세력 사이의 권력 다툼과 얽힌 궁중비사 속에는 수 많은 원한령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사약을 받고서 죽은 장희빈의 원한령이 누구에게 그 악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다.
다름아닌 자신의 질투 대상과 그리고 그 핏줄을 이어 받은 사람이 대상일 것이며,
사도세자의 히스테릭한 정신질환 역시 그러한 영적 빙의 현상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역사상 유래 없는 아버지의 친아들에 대한 살해 사건이라 할 사도세자의 뒤주 속 죽음은
영조 자신의 직계혈통에 관한 열등감과 일종의 근친자 증오가 만들어 낸 비극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정신병리학적인 지식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영적인 빙의문제가 개재된 것으로 보인다.
한 여인으로 제왕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던 장희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애증갈등과 원한이
그녀의 애인이었던 숙종이 다른 여자를 통하여 낳은 후손(손자)에게 미친 것이다.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여자의 한(恨)이 후세에 원한령으로 출몰하면 얼마나 무서운 비극을
연출하는가를 우리는 이 사건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본인은 동시대의 인물을 다시 불러 내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으므로
장희빈의 표독한 얼굴과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잔인한 말을 재생할 수 있다.
"나는 그 여자가 낳은 씨를 말려 버릴 거야"
----그녀의 마지막 말이다.
그 이후 이상하리만큼 왕조의 후손이 귀해져 결국 왕권이 쇠하고 세도정치가 횡행하였는바,
뒷날에 조선왕조가 쇠퇴멸망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유사한 원한령의 작용이 현대사회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고부간의 갈등은 봉건시대 이래의 전통적인 경향이고, 친족간의 재산 분쟁, 아내와 첩(시앗)의
서릿발 치는 질투와 모함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족간의 악업이 쌓인 집이 많고, 그런데다가
혼란기의 사상분쟁이나 일제시대의 억울한 투옥과 살인이 시대특성을 따라서 새로운 원한령으로
남아 그 후손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러한 원한령은 죽음을 당한 장소에 머물거나 아니면 그 사건의 관련자를 뒤 따르며
끝없는 원한의 복수를 시도한다.
그런것도 모르고 인연을가진 원한령의 훼방을두고서 자기의 불운한 운명을 탓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안동에서 올라온 어떤 젊은이는 간질과 유사하게 수시로 발작하는 이상증세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까닭에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영적인 관찰을해본 결과 그 사람 역시 자기의 증조부가 자기소유의 저수지에서 흘러 내리는 논물을
막아 아랫 동네 사람들의 원한을 사고 그 악업이 전수되어 결국 당시의 원한령들이 가하는 장애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여순반란 사건으로알려진 제13연대 모반사건의 와중에서 선량한 양민을 학살한 남자가 낳은
아들이 정신병으로 고통을 겪는 것도 보았다.
물론 인과응보라고는 하지만 어찌 그렇게도 철저하게 빙의령의 보복을 받는지 안타까운 생각에
여러날 고민한 일도 있다.
그냥 업보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도로 처리해야 하는지가 늘 갈등 요인이다.
본인이 그 사실을 인정하면 거의 모두 광명을 찾으나, 거의 그런 사람은 인격적으로 황폐화된
까닭에서인지 나의 말을 신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고 조상이 잘못한 일을 왜 내가 당해야 합니까?"
거의 대다수가 그런 말을 한다.
하지만 핏줄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연줄로 연결되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움직이는 인간의 끊임없는
증식과정을 어떻게 자기 혼자로만 보아 넘길 수 있을 것인지 재삼 음미해 보아야 한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의 분노를 사는 이완용의 증손자는 아마도 이러한 인연법을
모르는 사람인가 보다.
수많은 원한령이 아직도 이땅에 그냥 남아 있는데, 어떻게 감히 자기가 그 땅을 되찾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오랜 세월 타국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근신해서 살던 자세를 흩트리지 말고
그런 땅 찾기는 포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순국선열과 일제의 피해를 본 수많은 영혼들이 그냥 가만 둘리가 없다.
만일 영혼이 없다면 우리는 왜 국립묘지에 갈때에 묵념을 드리는가?
이는 형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공경자세이다.
일제에 희생된 선렬들의 분노가 무섭지도 않은가!
가념살 남을 해치려는 저주의 살
가념살 (加念煞)/가념장애 : 남을 해치려는 저주의 살
악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염력으로 인하여 자신의 앞길을 망칠뿐만이 아니라 다른사람의 영혼에도
악영향을 주어 해를 끼치는 일이 너무나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 가해행위를 일으키는 힘을 우리는 가념살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자기자신을 해칠 때는 자념살이지만 남을 해치는 것은 가념살이라는 의미가 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이러한 가념살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유유상종이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또한 그렇고 그런 사람들끼리 어울린다.
귀신이 영적으로 빙의하여 해치는 경우는 귀신을 정화시키거나 제령을 해주면 끝나는데,
인간이 인간의 혼에 직접 위해를 가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할 길이 막연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혼문제'나 '애정문제'에서 많이 나타난다.
미국에서 살다가 이혼을 생각하며 다시 한국에 돌아와 있는 Y씨는 자기가 시집식구들에게 당한
이야기를 하며 한없이 울었다. 남편이 자기를 이유 없이 미워하며 학대한다는 것이다.
그 부부는 전생의 원수였다. 아내 되는 사람이 전생에서는 남편이었고 말할 수 없는 학대를 가한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시집식구들은 전생의 장인집 식구들이었으며 이번에는 아주 더 심한 보복을
여자에게 가하는 것이었다.
Y씨는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누렇게 뜬 상태로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왔는데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수척해 있었다. 손찌검만 하지 않는다 뿐이지 완전히 노예생활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Y씨에게도 그만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의 타입이 여러가지이겠으나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면 질력이 나는 성격인 것 같았다.
말하자면 주는 것 없이 미워지는 얄미운 타입의 여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Y씨는 남편과 시집식구들의 욕을 실컷 한 다음에 이런 말을 하였다.
"그인간은 죽지도 않아요.어디가서 교통사고로 콱 죽어버리면 좋을텐데 살아가지고 계속괴롭혀요."
그 여자는 말투에 살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순종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하여 독기를 품으며 살아 간다는 것은
정말 인간으로서 최하위의 삶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점은 미국에서 온 K씨도 앞에 나온 사례에서 보인 것처럼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세상에서 생활을 하려면 마음까지도 새롭게 각오를 다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살기가 그대로 다가온 것이다.
가념살이 들어오면 얼굴에 독기가 흐르고 자기도 모르게 말투가 달라지며 하는 일마다 자꾸만 틀어진다. 말하자면 저주(詛呪)의 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가념살을 가진 사람 중에서 염력이 강한 경우는 심지어 그런힘으로 상대를 죽음에 몰아 넣는 경우도
가끔 발생시킨다. 지나가는 말처럼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따금 상담을 하러 오는 일이 있다.
"저 한테 그렇게 섭섭하게 대하더니 결국 그 사람은 죽고 말았어요. 자업자득이겠지요." 라든가,
"내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해놓고 그것들이 잘 살리라는 생각은 한번도 한적이 없어요"하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하면서 자기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주는 형법상으로 [불능범(不能犯)]에 속하므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일종의 미신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러번 그러한 저주의 힘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하였기 때문에
가념살이 가진 해독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 저주할 때는 염력이 강한 쪽이 일단 이기지만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저주할 때는
이상하게도 힘이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하는 사람이 당하는 일도 많다.
그것이 불가사의한 저주의 매카니즘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지 그러한 저주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더구나 상대는 새까맣게 잊고있는데 혼자 저주하면 오히려 자기만 당하는 비극이 연출되는까닭이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념살은 곧 자기에게 되돌아 와서 자념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빙의살과 가념살은 어디까지나 자기념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인간의 불행 요소라 하겠다.
그러므로 자기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남을 미워하지 않는 좋은 상념을 가지면 그러한 살을 가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자기가 그러한 악살(惡煞)을 맞지도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빙의살이든 가념살이든 또는 반사념살이든 간에 이 모든 살은
나와 어떤 상대라는 두개의 영체가 서로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이 용서하고 화해하면 그 힘이 투과되어 지나가 버린다.
말하자면 그러한 악살을 받지 않게 되고 만다는 의미이다.
마음 수양을 하고 종교를 믿는 이유도 그런데서 찾을 수가 있다.
우리는 그런 살의 제거를위해서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업으로 인한 악인연이 만드는 살
얼핏 보면 이는 제3의 힘에 의하여 운명적으로 이어져 나가는 하나의 불가촉한 패턴인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의 죄업이 아들에게 이어지는 경우를 보자.
전혀 자신의 업이 아닌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상령이 개입되어 자신의 출생이 이루어진 이상은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더구나 자기가 전생에 저지른 악업이 남아 있을 때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전생의 죄업 운운하는 것이 싫어서 불교적이고 윤회사상(輪廻思想)적인
사고방식을 아주 깡그리 무시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윤회사상이 없는 예수교 계통의 신앙을 신봉하며 절대신의 가호가 있으면
그런 전생이니 뭐니 하는 것이 아무 상관도 없다고 굳게 믿고 살아간다.
그러나'죄를 지었으면 의당 거기에 해당하는 벌을받는것'이 정상(正常)이고 또한 정의(正義)가 아닐까?
만일 자기가 죄를 지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잊으려 하고 절대신의 가호만 있으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호도하려 한다면 그런 사고는 참으로 위험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신앙하든 아무 상관도없이 윤회에의한 업보(業報)는 있는 그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 하는 차이와 어떤 형식으로 바뀌느냐 하는 오차는 있을지언정
과거세와 현세에서 저지른 악업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연법의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이 무슨 종교를 믿든지 상관없이 인간의 법체제 이외에도
시공을 초월한 인연의 세계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법>이 존재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업살이 많은 사람은 응당 좋은 인연을 맺기가 어렵다고 본다.
업살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환경 면에서도 열악한 곳에 태어나고,
통시사고(通時思考)로 해석할 때에 살이 많은 인생을 살게 된다.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언제나 어려운 조건을 짊어지고 산다.
얼굴을 보아도 결함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사주팔자를 들여다 보아도 역시 남들보다 살이 많은
구성을 보이는 일이 많다.
문제는 그런 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그저 주어진대로 그것이 팔자소관이라며 체념하고 살거나
아니면 더욱더 못된 짓을 서슴치 않는데 있다.
그래서 더욱 나쁜 인간으로 성장하면, 결국 그 사람은 영원히 벗어 날수 없는 지옥도(地獄道)를
가는 것이라 하겠다.
업으로 인하여 맺어지는 인연의 특징 몇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는 악업은 반드시 처음에는 선인연을 가장하여 다가온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둘째로는 악인연이 맺어질 때는 본인의 운명도 아주 악화된 상태
다시 말해서 시살(時煞)을 받는 상태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마지막 세째번의 특징은 본인이 전혀 악인연임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점이다.
물론 인연이 좋으냐의 여부를 꼭 알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대로 모르고 살아도 된다.
하지만 "누구 때문에 인생을 희생봉사했다"느니 하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르고 사는 것도 또한 인연이니 할 수 없으나, 인연도 모르면서 자기가 희생했다고 하는 것은
오만에 가득찬 언어도단이다.
이상에 말한 것처럼, 업살이 있는 사람은 인연을 잘못 만나는 타령살을 가지게 된다.
직장에 가면 상사가 괴롭히고, 집에 돌아오면 고양이 같은 마누라가 괴롭히며,
아이가 장성하면 아비를 무시하고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 모든 인생의 고난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여 조종되는 업살이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그 뿐 아니라 무언가 마음먹고 노력하려고 들면 갖가지 귀신들이 조금도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본인을 훼방하여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중도좌절(中途挫折)의 살을 보낸다.
살아있는 사람이 방해하고,죽은귀신도 방해하는 무서운 살이 바로 업살이며 그런사람은 빙의라든가
하는 영적인 장애도 많이 받아서 자칫하다가는 평생 동안 기를 못 펴고 살다가 간다.
말하자면 타령(다른 영혼)의 살을 받는 타입이라고 하며,
특히 영매체질인 사람은 그런 일을 참으로 많이 겪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업살의 전개 형식은 다음과 같다.
빙의살(귀신씜)
살(과거세의 죄업) → 자기 념살(불안한 자기)──--
↓
역가념살(되돌아 온 저주) ← 가념살(상대를 저주)←
↓
→ 자기의 사고 재난
<업살의 3각 구조>
방송출연자들의 가념살
1. 방송출연자들의 가념살(加念殺)
방송은 시의성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흥미라든가 유익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출연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실상보다 더 들어나 보이게 노력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실상보다 과장하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도덕성의 척도에 있어서도 대단히 까다로우므로 방송출연자들은 항상 보이지 않는
감시의 사슬에 묶여 지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출연자들에게는 실수가 용인되지 않는다.
아무리 녹화방송이라고 해도 실제에 있어서는 실수가 본인의 능력이 결여된 것으로 인지되는 만큼
항상 긴장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이와같은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쫓기는 듯한 행동양식을
몸에 익히고 있다. 말하자면 강박신경증(强迫神經症)에 걸린 사람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같은 스트레스를 그 사람들이 거의 모두 제대로 풀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에서
해소하고 있다는데 커다란 과제가 생긴다.
2년전인가 방송인으로서 스캔들에 휘말려 정규프로를 맡지 못하게 된 P씨도 그러한 사례에 속한다.
어떤 가수하고 바람이 났다는 내용이 도하 신문에 경쟁적으로 보도되자 도중하차의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사례는 관점에 따라서는 왜곡된 스트레스 해소가 도덕성을 건드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방송 출연자들한테 그러한 추문이 자주 나타날까?
유명인이니까 기자들이 따라 붙아서 그런 면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방송출연자들 자신이 좀 '끼'가 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벌써 여러 사람들 앞에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직업 그 자체가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 해내기
힘든 직업인 만큼 출연자들은 자기현시욕이 남달리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萬人의 殺이 거침없이 파고들어 자칫하다가는 그 희생자가 되고 만다.
殺이 낄 이유가 어디 있냐고 의문을 가질지 모르나 불특정 다수의 의식세계에 거침없이 넘나든다는
자체가 이미 살의 기본요건을 갖추고 있다 하겠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내 경우에도 Y라는 탤런트가 화면에 나오면 무조건 다른 채널로 돌려 버린다.
그러니까 우선 불필요한 念殺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대중이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감각이나 호불호의 감정 따위가 무시못할 살이 되어 다가온다.
방송출연자, 인기인들이 받는 대중의 살기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방법은 간단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남보다 잘나서 방송에 출연 한다는 헛된 망상을 갖지 말아야하고,
가능하면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을 많이 해서 그러한 념살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더구나 무대라든가 방송프로를 즐기는 수많은 혼령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 혼들의 비위를 거슬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 아무 탈 없이 잘 해낼 수 있다
영화가 만드는 살
영화가 만드는 살(煞) - "원초적 본능" 이란 영화를 보고서
{침대 위에서 두 남녀가 열정적으로 사랑을 한다.절정에 이를 무렵에 여자는 남자의 침대 머리 맡에
있는 쇠 기둥에 머플러를 사용하여 두팔을 재빨리 묶어 놓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얼음깨는 송곳으로
상반신을 난자한다.남자는 성감에 도취한 상태에서 꼼짝없이 피투성이가 되며 여자의 살인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영화가 관객 20만명을 동원할 만큼 대 히트작으로 만든 엽기적 살인 장면의 설명이다.
만일 그런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지닌 가장 무서운 살인본능을 적라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것을 주제로 삼아
돈벌이를 할 만큼 영화계에도 '살이 낀지' 오래 되었다.
물론 이 영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1970년초에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했던"솔져 블루"가 잔혹성을 그대로 표현한
초기의 영화였을 것이다. 기병대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인디안을 무참히 학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총탄에 맞아 머리가 터져서 피가 튀는 그런 화면을 걸르지 않고 보여준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정도의 장면은 아무 것도 아니다.
괴기 공포 영화에서는 서슴치 않고 시신의 몸에서 각종 오물이 흘러나오고 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을
보여 주는가 하면, 사람의 목을 예리한 칼로 도려 내는 잔혹장면 조차 걸르지 않고 보여준다.
이는 '네크로피리어(necropheria)/오물 선호증'이라고 하는 정신병적인 인간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인간정신 속에는 더러운 것을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러운것을 선호하는 면이 잠재되어 있으며
이 정신증상이 외부로 심하게 들어 날 때에 이를 가리켜 오물 선호증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듣는 욕설 중에서 "똥물에 튀길 놈"이란 더러운
말이 있다.
이렇게 냄새 나는 욕설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심리 구조 속에 자신도 모르게 오물 선호증이
꿈틀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러운 것을 연상하면서 상대를 그 속에 한데 묶어 버리고 자신의 울분을 토해 냄은 그야 말로
오물 선호증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이 지닌 오물 선호증 가운데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의 태반을 먹는다든가 동물의 피를 마시고
쾌재를 부르는 몬도카네(인간의 이상행위를 르뽀르따쥐 형식으로 추적하여 만든 야코페티 감독의
영화로서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에 상영된 일이 있다.)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한편 이런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일상에서의 위생 관념은 철저하여 결벽증에 가까운
모순을 보이는 일이 많아 참으로 인간 모순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 '원초적 본능(원제: Basic Instinct)'은 영화가 주는 오락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교묘하게 짜 나감으로 인하여 흥미를 유발한다.
그 하나는 성(性)이며 또 하나의 측면은 인간의 잔혹성이다.
이 두가지 요소는 원천적으로 리비도(Libido)의 미분화 상태를 교묘하게 자극한다.
다시말해서 성적인 쾌감과 잔인성은 인간이 만2세경 항문기(肛門期)를 거칠때 나타내는 심리상태의
미분화성과 유사하여 두 가지가 중복될 경우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자극을 받는다.
이 심리 현상이 극도로 도착을 일으킨 상태를 가지고 새디즘과 매조키즘이라 하며,
이는 학대성 음란증이라고 불러 변태적 성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살인장면과 성행위 장면을 동시에 연출하여 이 이론을 그대로 증명해 보인다.
인간이 살인을 저지를때 느끼는 짜릿할만큼의 강렬한쾌감과 성행위시의 극치감(SexualEcstasy)을
영화 감상자로 하여금 대리 만족을 통하여 맛 볼 수 있게 하였으므로 전대미문의 인기를 끌 것은
당연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영화를 본 사람의 모방심리이다. 살인 동기가 분명하지 않고 다만 여주인공이
소설책을쓰는 자료로서의 실험적인 살인정도로만 인지되게끔 유도하는 영화제작자의 안일한자세는
살인 동기가 분명하지 않은 현대 범죄와 유사하다.
말하자면 이영화의 제작자는 공연히 사람을 죽여도 무방하다는 정도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물론 영화는 재미가있어야 하지만 어째서 사람을 죽여야하는가 하는 범행동기가 도무지 불명확하다
이는 그 동안 미국영화가 살인중독증에 걸려 이미 한계에 도달할 만큼의 내성을 가진 것으로 여기고
관람자를 처음부터 압도하는 것 같다.
차라리 여주인공이 그러한 본능적인 살인광(Mudering Menia)이라는 설명이 따라 주었더라면
그런대로 이해가 될 법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범행동기가 불명확하다.
예를 들면 변태성욕자라고 해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아무런 설명이 없고 그저 '재미로 사람을 죽인다'는 인상만을 남긴다.
이 점은 잔혹 영화의 대명사라 할 '양들의 침묵'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살인의 쾌감을 관람자에게 전달하여 나가므로,
영화를 보다가 보면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범행을 저지를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까지 만든다.
이런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로 그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정신병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은 이를 모방하고 싶은 충동을 가질 것이다.
그런 모방심리의 결과에 대하여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이 영화는 4,5회의 살해장면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지독하게도 아름다운 여주인공에 이끌려 들어
가도록 관객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남자 주인공인 형사가 결국 그 여자의 범행까지도 묵인하고 함께
정사를 즐기는 대목에서 종지된다.
잔인한 장면과 에로티시즘은 기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영화의 소재로서 여러 영화에 인용되는데,
공포영화에서 특히 그점을 악용한다.
그리고 영화'원초적본능'에서는 끝끝내 치밀하게 조작된의도에 의하여 범죄자는 잡히지 않는것이다
그래서 범죄가 저질러져도 무사할 수 있다는 이상심리를 조장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그점이 문제이다.
모방범죄는 그런 완전범죄의 허구성에 입각하여 잡히지 않을 가능성을 안고 일어 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참으로 도덕적으로 해악을 끼칠 악독한 영화이고 앞으로 살기를 품고 있는 사람들을
충동질할 최악의 영화이다. 영화 평론가인 이세웅 씨는 시사저널 6월 2주호에서 이렇게 말한다.
" ---이 영화는 줄거리를 이어나가게 만드는 살인동기가 엽기적 흥미에 치우치고 있어, 스릴러의
껍데기를 씌운 준 포르노 필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할 말은 많지만 표현능력이 부족한
연출자와,할 말은 별로 없으나 탁월한 표현기술을 가진 감독 가운데 후자가 더많이 더자주 성공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원초적 본능>은 이 안타까움을 다시 확인시켜 준 영화일 뿐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적인 살
이씨 왕조가 13세기에 성립되어 약 500년간을 유지해온 가운데 다른 왕조보다 극심한 골육상쟁의
비극을 보여준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성계의 쿠데타에서 연유한 것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역사상의 일은 언제나
가능성으로 말할 수 없고 사실에만 입각해야 하므로 따질 것이 못 된다고도 한다.
아무튼 근세의 조선왕조는 왕자의 난에서부터 명성왕후의 시해사건에 이르기까지 피로 물든 역사를
남기고 있다.
그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아무런 연관성 없이 그저 별개의 사건으로 일어난 것일까에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굵직굵직한 일만 추려보아도 대강 열가지 이상의 궁중사건이 있는데,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를 나누어 보면 성격의 변화가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왕권을 다투는 세력의 싸움이 주축을 이루지만 이후에는 그야 말로 내전에서
보이지 않는 영혼들의 힘이 작용하는 느낌을 져버릴 수 없다.
이를테면 장희빈의 왕비등극을 향한 음모 같은 것이 끝끝내 살기로서 작용하여 왕조의 멸망을
초래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성계는 왕조를 세우기는 하였어도 신구세력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과도기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 아들에게 왕권을 물려 준다.
그러나 정종은 본래 자기의 세력을 가지지 못한 무능함 때문에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본시 아버지와
뜻이 맞아서 쿠데타에서 러닝메이트 역할을 해온 아들 방원이 다른 형제들의 세력을 척결한 이후
왕권을 확립한다.
바로 이 일이 이씨 왕조의 보이지 않는 비극적 인과를 만든다.
형제간의 살육이란 참으로 무서운일 임에도 권력앞에서는 그러한 인륜같은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왕자의 난은 과도기적인 성격을 띄던 정부를 확고한 신 세력으로 교체시키고 이어서 즉위한 세종은
선조들의 왕권확립에 힘입어 문화정치로 태평성대의 기반을 다진다.
이때 까지가 약 3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세종은 한글 창제등의 문화적인 업적이란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반대측면에서는
호색하던 인물로서 많은 자손을 낳았고 결국 후세의 왕권갈등을 일으키는 배경을 만들었다.
이후 세조의 왕위 찬탈을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나중에 계유정란으로 김종서등 훈구세력이 숙청되는 과정에서 세조는 살을 맞게 된다.
그는 말년에 원인불명의 등창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으며,
밤마다 나타나는 사육신의 혼령으로 시달렸다.
< 이조 500년의 살 >
년도 사건 주기
1398 - 1400 왕자의 난
1453 계유정난 53년
1494 - 1506 연산군의 폭정, 중종반정 53년
1592 - 1598 임진왜란 86년
1608 - 1623 광해군의 패륜, 인조반정 25년
1627 - 1640 정묘/ 병자호란 4년
1689 - 1694 장희빈 득세/사사 54년
1749 사도세자 사망 55년
1850 철종 등극 / 안동 김씨 세도정치 101년
1885.8.20. 명성왕후 시해사건 35년
* 평균 주기 : 51.8 년
이후 충절의 상징이 된 사육신의 원혼은 현대의 반정부 투쟁에서도 이따금 원용되었다.
김동길 박사 같은 경우는 '사육신의 꿈'이란 책을 통하여 독재정부에 저항하는 영적인 힘을
선동 조장한 일도 있다.
어쨌든 세조의 왕위찬탈은 왕자의 난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러한 세력의 재편성과정은 이로부터
53년 뒤의 중종반정으로 이어진다.
그뿐 아니라 세조는 흥선대원군으로 환생하여 조선조의 꺼져가는 마지막 왕권의 불꽃을 되살리려
애쓴다.
이어서 연산군의 횡포스러운 독재는 여자의 한이 왕권에 영향을 미쳐서 무서운살이 시작될수있음을
보여 주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등은 연산의 어리석음에서 생긴 숙청작업이었다.
왜냐하면 폭군 연산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수에서 그의 본질을 더욱더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반기를 들고 연산을 몰아낸 중종반정은 이 점을 제대로 풀지못한 비극적 역사의 시작에
불과했다.
왕자가 가지게되는 절대적인 고독과 왜곡된 성의식이 모친에대한 애정결핍증과 더불어 서릿발 같은
한을 심어 주게 되고 종말에 가서는 왕좌로부터 폐위되는 비극의 역사가, 이후 광해군의 폐위와
사도세자의 비극적 부자 갈등에서도 반복되었음을 보면 누구나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조의 역사를 하나의 가족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여자의 한과 콤플렉스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조 이후의 역사에서 보면 주변세력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 행정관료들 중심의 파당정치로
옮겨져가서 감소한 반면에 중앙집권적 착취구조로 인한 민란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괄의 난이나 홍경래의 난, 임꺽정의 난, 근세의 진주 민란, 그리고 잘 알려진 동학농민전쟁 등은
그점을 반증해 주는 역사이다.
임진왜란과 잇단 정묘, 병자호란은 200년동안 지속된 이조의 성장기를 마무리 짓고 17세기 이후의
쇠퇴기에 속하는 무능하고 타락한 정부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예를들면 이조에 나타난 청백리 200인 중에서 180명 정도가 임란 이전이고
이후에는 그 명예로운 상을 받을 만한 인재가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을 보아도 이점을 알 수 있다.
왕조가 쇠퇴함에 따라 왕조가 개시된 이래 약200년간의 세월이지나 저절로 하나의 왕가가 생명력이
위축될 즈음에 발생한 외침은 어찌 보면 이 왕조로서는 생명유지를 위한 기적과 같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는 역사적 환란이었다.
변란이 있고나서부터 민심이 예전 같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말씨도 격해져서
'곷(花)'이라 발음하던 것이 '꽃'이 되고 '말삼(言)'이라고 하던 것이 '말씀'으로 변하는 등
인간의 혹독한 심상이 발음의 경음화로 드러나 상스럽고 살기가 강해졌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전쟁이 가져온 생산력의 약화로 인하여 왕조가 소요할 예산이 부족하여 경복궁을 떠난
창경궁 종사가 무려 250년이나 계속되는 등 나라 살림이 말이 아니었다.
경복궁은 남성을 강화시키는 자리인 반면에 창경궁은 여자의 세력을 강화 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는
곳이라서 더욱더 왕조에 구중궁궐의 힘이 작용하게 민드는 추세를 보였다.
장희빈의 암투사건은 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장희빈과 그의 아우 장희재의 한맺힌
죽음은 결국 왕조에 외척의 입김이 작용하는 첫번째 계기가 되었다.
왕조의 몰락이 세도정치로 인하여 촉진되었음은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씨왕조는 외세와 척신의 발호에 의하여 쇠망하였으나
보이지 않는 한 맺힌 여자의 영혼들이 적잖게 뒷켠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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