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효 (1861∼1939)가 살던 집

2010. 4. 4. 12:41가인풍수지리·음택과양택

 

 

 

 

서울 팔대가(八大家) 중의 하나로 전해지는 이 가옥은 조선 제25대 철종(哲宗)의 딸인 영혜옹주의 남편 박영효 (1861∼1939)가 살던 집이다.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에 있던 것을 이곳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다.

이 가옥은 처음에는 안채, 사랑채, 별당채, 대문간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복원당시 안채만 남고 모두 없어졌던 것을 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사랑채와 별당채를 복원하였다.

안채는 ('') 자형 몸채에 'ㅡ'형 행랑간이 붙어 '' 형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과 안방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개성(開城)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형(中部地方形)으로 서울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장대석(長臺石)을 사용한 기단(基壇), 칠량가(七樑架)의 가구(架構), 6칸 크기의 부엌 등에서 대가(大家)의 면모를 느낄 수 있으며, 파련각(波蓮刻)한 보아지와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사용하고, 마루밑 고막이 벽에 투공문양(透孔紋樣) 벽돌을 사용하여 환기공(換氣孔)을 설치한 점 등은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이다.

 

 

대문의 구조는 이중구조로서 兌門(태문)서쪽에 해당

 

부억의 위치는 兌門에 乾조로서 돈과 곡식이 풍성하고 자손이 총명하며 아름다운 부녀자가 많으나

처가 많고 서자가 많을 가상이다-현재의 위치를 기준한다면

 

 

 

태문에감주 화해택으로 사업패.작은부인요절.도박음탕.오래되면 패절터

 

 

 

좌향은 계좌정향으로 서사택이다

태문에손주 음이넘치고 양은 쇠하며 부인이상정하고 인재는 점점패하고 병이많이 생기는 터임

현재의 위치로 평가함

 

 

 

 

부억의 마루밑 고막이 벽에 투공문양(透孔紋樣) 벽돌을 사용하여 환기공(換氣孔)을 설치한 점 등은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