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4. 12:49ㆍ가인풍수지리·음택과양택
수목장림 조성 시 고려할 사항들
1.머리말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낙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위 시조는 절대 불의(不義)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성삼문의 굳은 절개가 표현된 것으로, 세상을 굽어보는 늙은 소나무의 푸른 지조가 돋보인다.
전통 마을의 입구에는 대개 잡귀가 침범치 못하도록 당산(堂山)나무가 서 있고, 매년 정초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당산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이 나무 아래에서 지낸다.
또 마을의 대동단결을 위해 줄다리기를 하고,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을 나무에 둘둘 말아 돌려놓고는 접근을 금했다.
그러므로 노거수는 영물(靈物)로 보아 가지를 부러트리거나 낙엽만 긁어가도 재앙이 닥쳐 불행해진다며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위의 시조에서 낙낙장송이 되겠다는 표현 역시 자기 영혼을 소나무에 의탁하겠다는 뜻 보다 소나무는 날씨가 추운 후에도 잎이 시들지 않으니 세상이 이롭지 못한 것들로(백설) 가득 차도 자기만은 홀로 절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소나무를 빗대어 표현한 것뿐이다.
그 결과 노거수는 민간 신앙의 대상일 뿐 정작 사람의 영혼을 간직한다고 믿지는 않았다.
진안군 마령초등학교 내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14호 이팝나무도 아기의 무덤에서 자랐다는 전설만 전할 뿐 아기의 혼이 자라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현재 한국에는 매년 25만 명 가까운 사람이 사망하는데, 이들의 사체를 처리하는 방법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급속히 선회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수목장(樹木葬)이란 장묘 방식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목장이란 사체를 일단 화장한 후 유골 분을 나무 밑에 파묻거나 주위에 뿌리는 방식으로 사체를 처리하는데, 유골분을 자양으로 흡수한 나무를 고인의 영혼을 간직한 것으로 보아 나무를 추모의 대상으로 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새로운 장묘 방식이다.
매년 여의도만한 땅이 묘지로 잠식당하며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매장 문화를 뿌리 뽑거나 축소해야 한다며 정부는 ‘장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까지 앞장 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사회 각층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사후에는 화장을 하겠다며 서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 남아 있고, 오히려 환경오염이란 심각한 부작용이 대두되었다.
왜냐하면 산 속에 설치된 가족 혹은 문중의 납골시설은 또 다른 환경 파괴물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자 환경운동가들은 산속에 석조물을 방치할 바에는 석물을 설치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 전통적 매장이 더 환경친화적이란 주장까지 제기되어 일단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이런 와중에 가장 친환경적 묘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수목장이 우리의 전면에 나타났고, 이것은 산림을 훼손하는 일이 없고, 벌초 등 무덤을 관리하는 노력도 비용도 필요 없으니 소비적이고 자연 파괴적인 우리의 장례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최적의 장례 방식이란 것이다.
물론 수목장은 국토 활용의 비효율을 해결하고 과소비를 막아주는 현실적인 효과는 크다.
그렇지만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통으로 이어 온 매장 풍습이 효율성만을 강조한 수목장으로 바뀌려면 수목장에 대한 국민의 의식구조 특히 수목장으로 부모를 장사지내도 자손으로써 조상을 숭배하는 사상에 하등 잘못이 없다는 공감이 우선되어야 한다.
만약 공감 형성이 어렵다면 유교적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의 국민성을 감안할 때 수목장은 몇 환경 단체의 메아리 없는 아우성에 그칠 수도 있다.
이에 본 원고는 장례에 대한 우리들의 전통 의식을 되짚어보고, 그 의식과 수목장이 서로 상충되는 점을 찾아내고, 그 다음에는 수목장이 새로운 장례 문화로 수용되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되는 가를 살피고자 한다.
2.장례에 대한 우리의 전통 의식
우리의 조상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 하여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땅속에 매장된 신체는 바람에 흩어진다고 보았다.
즉 사람의 영혼은 주검에 머문다고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인의 관등성명을 적은 신주에 혼백이 머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면 방안에 지방(紙榜)을 써 붙임으로써 영혼을 맞이하고, 상례에서 신주를 모신 장소에 따라 영혼도 그곳에 함께 머문다고 보았다.
그래서 장지에서 신주를 집으로 가져오는 반혼(反魂)을 집으로 혼백을 다시 모셔오는 행위라 생각했고, 만약 사찰에 신주를 모신다면 영혼 역시 그 사찰에 머문다고 보았다.
결국 사람이 죽으면 주검과 영혼이 서로 별개로 움직인다고 본 것이 전통 사상이다.
하지만 조상의 묘지를 길지에 두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유교의 효 사상에서 출발해 풍수 사상으로 정착되었다.
‘효는 만행의 근본’이라 여겨 살아 계실 때도 부모를 잘 모셔야 하지만 돌아가신 뒤에도 집 가까이에 묘를 두고 잘 돌보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체를 매장한 다음 무덤이 무너지거나 여우같은 산짐승이 사체를 위해하는 것을 막는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죽은 부모에 대한 가장 효성스런 행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모의 상을 당하면 여막을 짓고 삼 년 동안 묘를 지키며 사는 시묘살이가 양반 계층의 일반적인 풍습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신주 제도가 확립되기 전 시신이 묻혀있는 무덤에 고인의 영혼도 함께 머물러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위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상례에서 혼백은 무덤에 머물지 않고 신주에 머문다는 믿음이 가장 보편적인 생각이다.
제례에서 영혼의 강림을 청하는 강신(降神) 의식도 제주(祭主)가 신위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는 것이 전부인데,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에 계신 영혼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사실을 알리기 행위이다.
또 부모의 묘를 길지에 두어야 자식 된 도리를 다한다는 생각은 풍수의 발복 사상과 유교의 효 사상이 결합되어 나타났다.
본래 한국의 전통 장례는 복장제(復葬制)이다.
복장이란 임종에서 출상까진 유교식으로 하지만, 땅에 바로 매장하지 않고 1~3년 동안 나무판자 위나 평상 위에 관을 올려놓고 이엉을 덮은 뒤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 무덤에 매장하는 방법이다
. 구례의 운조루에는 사랑채의 한 편에 가빈터(광)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3일 후 입관하고 집안의 가빈터에 3개월 동안 안치했다가 출상했다고 한다.
관을 풀이나 짚으로 덮은 초분(草墳) 역시 복장의 한 예로 전국적으로 행해졌으며, 지석묘나 옹관묘도 구조로 보면 뼈만을 묻은 복장제였을 가능성이 높다.
복장제를 통해 뼈만을 조상이 묻힌 선산에 묻는 풍습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신의 살은 더러워 땅을 더럽힌다고 생각했고, 또 뼈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어 땅에 뼈를 매장하면 영혼까지 지하에 모시는 것으로 생각한 결과이다. 따라서 땅속의 조건이 나빠 뼈가 검게 퇴색하거나 물이 잠겨 육탈(肉脫)이 되지 않으면 영혼이 춥게 지내거나 불편해 저승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매장된 뼈가 희거나 황골이 되어 깨끗이 보존되면 영혼도 편안하고 그로 인해 후손도 큰 복을 받고 행복해진다며 전통적으로 뼈를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집이 잘 살면 ‘뼈대있는 가문이다.’라고 말하고, 잘못되면 ‘뼈도 못 추릴 놈이다.’하며 개인의 행복과 불행을 조상의 묘지의 좋고 나쁨에서 원인을 찾기도 했다.
또 불교에서 스님이 입적(入寂)하면 사체를 다비(茶毘, 화장)하고, 다비 후는 사리를 거두어 부도에 안치하는데, 이 역시 스님의 영혼이 사리에 깃들어 있다고 본 것이다.
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며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은 통도사의 예는 뼈가 신앙의 대상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 결과 묘제(墓制)에서도 땅속에 묻힌 뼈가 나무뿌리나 해충 등에 침범 받으면 뼈에 깃든 영혼도 곧바로 고통을 받고, 그로 인해 자손들이 불행한 일을 겪는다고 생각해 극히 꺼려하였다.
무덤 속으로 나부뿌리가 침범해 시신이나 유골을 휘감고 있으면 이것을 목염(木?)이라 부르는데, 주로 습기가 많고 생기 없는 푸석푸석한 땅에 묘를 쓴 경우에 많이 발생한다.
목염이 들어 뿌리가 체백(體魄)을 괴롭히면 후손 중 정신병, 신체 마비 등 불구자가 태어나거나 또는 관재 구설로 파산한다고 한다.
나무가 시신의 살과 피 그리고 뼈를 자양분으로 흡수했으니 그 나무에 고인의 영혼이 담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 무덤 가까이는 뿌리의 피해가 없는 잔디를 심었고, 소나무, 잣나무 같은 묘지목은 멀리 심는 것이 원칙이었다. 『산림경제』의 《종수(種樹)》편도, ‘묘는 음택(陰宅)이다. 묘 부근에 자라는 수목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햇볕이 잘 들게 한다.
잔디가 말라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무뿌리가 무덤 속으로 뻗을 염려가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풍수는 땅속의 체백이 보다 안전하고 깨끗이 보존되는 특별 장소를 찾는 방법이 오랜 세월 동안 학문으로 발전해 왔고, 일반적으로 장풍(藏風)과 득수(得水)의 터가 중요시 되었다.
어떤 사람은 풍수지리가 권력자의 산소잡기에만 악용되어 왔고, 한국 사회에 발복만을 바라는 명당 선호 풍조를 부추겼다고 혹평한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풍수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신라 말에 전래되어 지금까지 국민의 57%가 풍수 사상을 믿는 현실은 풍수가 반사회적, 반윤리적 해악만을 끼친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의 좀더 안락한 삶을 찾거나 혹은 생명 존중, 인륜적 효심 등에 효험이 있었거나, 마을이나 도읍지를 정하는 등 우리 생활에 어떤 순기능을 담당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미신이었다면 우리의 의식 속에서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풍수가 기층 사상이 된 배경에는 발복을 믿어서가 아니라 부모의 뼈를 보다 깨끗하고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묘지를 찾는데 풍수지리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뼈를 깃든 영혼을 부모 대하 듯 한 우리 조상들이 효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풍수지리를 이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3.수목장에 대한 문화적 충돌들
우리가 잘 아는 여러 꽃에 사람의 영혼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무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도라지꽃는 오빠를 기다리던 도라지가 죽어 핀 꽃이고, 백일홍은 백 일 동안 혼례가 성사되길 바라던 처녀가 정성으로 피운 꽃이고, 달맞이꽃은 사랑에 빠진 로즈가 사랑하던 사람이 다른 처녀를 선택하자 죽음을 택했고, 그 남자가 로즈를 찾아 계곡을 찾아왔을 때는 희미한 달빛 아래서 달맞이꽃만 피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유골분을 나무 밑에 파묻거나 주위에 뿌려 나무가 그것을 흡수했어도 우리 정서는 그 나무에 영혼이 담겼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고인의 관등성명을 써 나무에 붙여놓으면 그것에는 고인의 영혼이 머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의발묘(衣髮墓)에서 전통을 찾을 수 있다.
옛날에 전쟁터로 나갈 때면 머리카락을 잘라 놓고 떠났다.
혹시 전사하여 시신이 돌아오지 못하면 가족들은 고인의 옷가지와 머리카락을 땅에 묻으며 묘를 대신해 추모하였다.
그것도 없으면 송판에 관등성명을 쓴 후 땅에 묻고는 신주묘(神主墓)라고 불렀다.
모두가 신체나 물건 대신 글자가 영혼을 대신한다는 예들이다.
신도비나 묘비를 새우고, 상석에 고인의 관등성명을 기입하는 것이 널리 퍼진 장례 문화인데, 만약 수목장을 치른 후 나무에 고인의 관등성명을 제대로 부착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도 후손으로써 조상을 섬긴다는 의식에 스스로 만족할 정도가 아니라면 아마도 상주의 마음 한 편에는 깊은 슬픔과 죄송한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이것은 비록 본인은 수목장에 서명했어도 자손들은 그 서명을 쉽게 이행치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 수목장은 화장을 전제로 한 장묘 방식이다.
그런데 화장을 하면 조상의 뼈가 급히 타버리고, 화장한 골분은 자손에게 동질의 기를 전할 어떤 유전인자도 포함치 않음으로 화장할 경우 풍수는 자손에게 해도 득도 없다고 본다.
따라서 화장을 한 후 수목장으로 유골분을 처리해도 풍수상으론 어떤 해로움도 자손에게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무덤은 한 사람이 이 땅에 살았다는 확실한 흔적이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에겐 추모할 여지를 남겨 주는 최소한의 유품이다.
영월에 있는 김병연(김삿갓)의 묘를 찾아가면 사람이 다녀가며 남긴 시들이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 무덤이 진짜 김삿갓 묘란 확신도 없으면서 그럴 것이란 추정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찾아간다.
마찬가지로 수목장을 한 후 나무를 부모 묘로 삼고서 성묘를 다녔는데, 어느 날 나무가 죽거나, 베어지거나, 쓰러졌다고 한다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족보 의식이 강한 민족도 없는데, 이것은 산사태가 나 부모 묘가 망실된 경우와 같으며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예상되는 문제점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수목장은 전 국민의 새로운 장묘 문화로 정착되기 어렵고, 가난한 사람 또는 무연고 죽음에 한하여 시행될 염려가 있다.
또 전통적으로 나무뿌리가 무덤을 침범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 했다.
이것은 영혼이 깃든 조상의 유골을 나무뿌리가 감고 있으면, 영혼도 상당한 고통을 받으며, 그 고통은 후손에게 그대로 전해져 그들이 불행해진다는 풍수 사상 때문이다.
그런데 수목장은 더 나아가 영혼이 깃든 유골분을 나무에게 비료로 주겠다는 발상이니 전통 사상에 비춰보면 도저히 납득이 어렵다.
이에 대한 대안으론 영혼은 신주에만 머물러 있다는 신주제도를 다시 부활시켜, 비록 유골분이 나무에 흡수되어도 신주만 절 혹은 교회 등에 깨끗이 봉안된다면 영혼은 편안하고 극락왕생한다는 사회적 공감을 폭넓게 이끌어내야 한다. 여기에는 영혼은 신주에 깃들며, 화장한 유골분은 후손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풍수적 관점이 그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4.결론
수목장에 대한 관심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서울시도 자연 경관이 좋은 경기도 용미리 부근에 3만평의 수목장림을 조성할 예정이고, 경북도는 수목장림 조성을 혁신 과제로 선정하고 올해 내에 총1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처럼 지자체가 앞 다투어 수목장림을 조성하는 데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묘지 문화의 심각한 부작용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장례 문화는 일단의 구호나 정책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속에 오래 도록 자리 잡은 조상 숭배 사상이 우리 세대에서 얼마나 바뀌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신주만 잘 모셔도 부모의 영혼이 편안하다는 전통 의식으로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고, 화장한 골분은 어떤 방식으로 장사지내도 후손에겐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다는 풍수적 설득이 더욱 필요하며, 나아가 수목장 한 나무가 훗날 죽거나 쓰러져도 후손에게 부모를 계속 추모할 여지는 남겨줘야 할 것이다.
특히 수목장을 지낼 나무의 선정에 중요한데, 키가 큰 나무보다는 어린 나무가 더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늙은 나무는 언제 고사할지 모르지만, 어린 나무는 계속 자라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추모의 정도 함께 자란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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