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비밀의 문을 연 황남대총

2010. 9. 6. 19:03고증·참역사연구

1600년 비밀의 문을 연 황남대총

 

무덤방 크기만 동서 24m에 남북 20m

남북 길이 120m에 봉분 높이 23m에 이르는 현존 한반도 최대 규모 고분인 경주 황남대총(皇南大塚)이 1천600년 만에 마침내 문을 열었다.

남편이자 신라왕이었을 남자는 남쪽 봉분에, 그의 부인은 북쪽 봉분에 자리한 쌍둥이 적석목곽분(績石木槨墳. 돌무지덧널무덤)인 황남대총 특별전이 6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6일 개막했다.

 
일반 관람 개시에 하루 앞서 취재진에 먼저 공개된 이번 특별전은 황남대총 쌍분(雙墳) 중에서도 남분(南墳) 봉토 안에서 발견된 나무 기둥 구멍을 기초로 목조건축물을 실물의 95% 크기로 복원한 것이다.

이 모형은 완벽한 복원품이 아니라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기둥 구멍 흔적을 기초로 나무 기둥을 박고 들보를 얹은 수준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왜 이 무덤을 대총(大塚. 큰무덤)이라 하는지, 그리고 왜 현존 국내 고분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는지를 실감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 목조구조물의 정확한 기능은 알 수가 없다. 무덤을 만들기 위한 구조물이라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최근에는 신라고고학 전공자인 차순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무덤을 조성하기 전에 시신을 임시로 안치해 둔 공간인 빈전(殯殿)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어떻든 이 목조구조물은 발굴조사 결과 규모가 동서 24m에 남북 20m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사학과 교수이기도 한 최광식 박물관장은 "내가 명색이 신라사 전공자인데, 그동안 황남대총 발굴성과를 인용해 글도 쓰고 강연도 많이 했지만, 나부터가 막상 이런 규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목조구조물 복판에 무덤 주인공이 안치된 목곽(木槨)과 목관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목조구조물 한쪽(서쪽) 끝에는 토기를 비롯한 부장품을 집중적으로 묻은 공간인 부곽(副郭)이 있다.

이번 특별전은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이런 무덤 배치를 기본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목조구조물 중앙에 관을 배치하는 한편, 부곽에는 실제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서도 어린아이 키만한 대옹(大瓮) 몇 점을 전시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남분과 북분에서 출토된 무수한 유물 중에서도 각 종류를 대표할 만한 것들을 내놓았다.

신라가 왜 '황금의 나라'인지를 실감케 하는 각종 금그릇과 금귀걸이, 금관, 금제허리띠가 전시장에 그득했다. 비단 황금뿐만 아니라 은제, 동제 그릇도 풍부하고, 이 무덤이 만들어졌을 서기 400년대 신라사회에서는 어쩌면 황금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을지 모르는 각종 로만글라스(로마제 유리제품)도 자태를 드러냈다.

박물관 측은 이번 전시를 통해 남분과 북분의 차이 또한 부각하고자 했다. 두 봉분이 맞닿은 곳을 조사한 결과 북쪽 봉토가 남쪽 봉토를 깎아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남분이 먼저 만들어지고 북분이 나중에 조성됐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두 봉분은 출토 유물에서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남분에서는 각종 무기류가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데 비해, 북분에서는 이런 유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북분에서는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자를 적은 유물까지 확인됐다. 북쪽이 여성, 남쪽이 남성을 위한 무덤이라는 사실을 이로써 확실히 알 수 있다.

5만8천441점에 달하는 황남대총 총 출토품 중 '겨우' 1천268점만을 내놓은 이번 특별전 전시품만으로도 남분과 북분은 차이가 비교적 확연히 드러난다.

아무튼 1973년 이후 1975년까지 대대적으로 발굴된 황남대총이 이제야 그 비밀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