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왜 천혜의 요새에서 왕건에게 패했을까?

2009. 6. 22. 22:10이야기·미스터리·히스토리

궁예는 왜 천혜의 요새에서 왕건에게 패했을까?  
    2009-06-22 10:20
춘천 등선봉에서 만난 역사와 아름다운경치

▲ 맥국과 궁예의 옛 성벽이 남아 있는 모습

“오늘은 전에도 올랐던 삼악산에 오르지 말고 등선봉 등산 어때?”
“등선봉은 삼악산보다 작은 봉우리가 아니야.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산인데”

6월 16일. 삼악산 등산을 위해 경춘선 열차를 타고 강촌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나눈 대화다. 일행 한 사람이 왠지 몸 상태가 안 좋다며 쉬운 산행을 하자고 해서 삼악산 대신 등선봉 등산을 제안했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오히려 더 힘든 산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지난겨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등선봉에 오른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와 또 다른 일행은 등선봉이 초행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더 힘들 것이라던 일행이 그냥 등선봉 산행을 해보자고 한다. 초행인 우리들을 배려한 결정인 것 같았다.

춘천의 명산 삼악산 대신 등선봉에 오르기로 하다

우리들은 강촌역에서 내려 북한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넜다. 마주 바라보이는 등선봉은 급경사의 우람한 체구를 드러내며 우리들에게 위압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강을 건너자 도로를 가로지른 육교가 나타난다. 육교를 건너자 도로변 등선봉 아래 자락에 철조망이 쳐있다. 등산로입구는 그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 있었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금방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예상은 했었지만 오르막길이 너무 급경사였다. 일행들은 앞장서서 잘도 올라간다.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던 일행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거뜬한 모습이다. 뒤로 쳐지는 건 오히려 나 한 사람 하나뿐이었다.

하늘을 가린 숲에서는 이따금 물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새벽에 소나기라도 지나갔는지 산길도 젖어있고 풀숲과 나뭇잎 위에도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습도가 높아 땀을 더 많이 흘릴 수밖에 없었다. 뒤쳐진 나를 위해 앞서 오르던 일행들이 잠시 쉬며 기다려주고 있어서 다시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 능선길의 우람한 소나무

▲ 두꺼운 낙엽층을 뚫고 올라와 꽃피운 야생화

그렇게 40여분 만에 첫 번째 능선길에 올라섰다. 그러나 산행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강촌역과 골짜기가 안개 때문에 희미하다. 강촌역 쪽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이 봉우리만 오르면 곧바로 등선폭포 골짜기로 내려설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역시 산은 올라봐야 그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와! 멋있다. 이 등선봉 아주 멋진 산이네, 보기보다 아기자기하고”

급경사를 힘들게 올라 능선길에서 바라본 북한강과 맞은편 산록의 경치가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온 것이다. 북한강변 도로가 해발 70여 미터쯤 될 텐데 이 능선이 340미터쯤이니 급경사길 270여 미터를 단숨에 올라온 셈이다.

능선위에 올라서서 앞쪽 저 아래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벼랑 위에 서자 바윗길이 만만찮아 보이는 능선 앞쪽으로 하얀 바위를 갈기처럼 세운 봉우리가 바라보인다. 그 앞쪽으로는 소나무가 많아 보이는 더 높은 봉우리가 솟아있었다.

대체로 평탄한 능선길을 지나 오르막 경사진 길로 들어서자 바위가 점점 많아진다. 조금 더 오르자 능선 한쪽 모서리가 날카롭고 절리가 미세한 삼악산식 바위로 형성된 벼랑이 나타난다. 이런 아찔한 산줄기는 정상까지 이어질 듯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슬아슬, 아기자기, 멋지고 아름다운 바위능선길

그래도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키운 야생화들이 고운 자태로 힘들어 하는 우리들에게 위로의 미소를 보내준다. 바윗길은 위험하긴 했지만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바위들은 균열된 채 뾰족뾰족 엇물리다시피 서로 등을 기대고 있어서 손잡이와 발 디딜 자리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바윗길 오르막은 군데군데 평탄한 전망대가 나오기는 했지만 꽤 길게 이어졌다. 능선 오르막길은 우람하게 크고 무성한 노송들이 군데군데 버티고 서서 바위벼랑을 감싸고 숲속으로 이어졌다. 절벽 끝에 서있는 커다란 소나무 줄기를 안고 소나무가지 아래를 내려다보자 짜릿한 전율과 함께 북서쪽 골짜기에서 치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 산길을 오르다가 뒤돌아본 강촌역 일대 풍경

▲ 깎아지른 듯한 바위봉우리와 벼랑

절벽 언저리에 서있는 우람한 소나무 가지 끝에 파도처럼 굴곡을 이루고, 중첩되어 보이는 낮은 능선 뒤쪽으로, 한낮의 햇볕을 받아 푸른빛으로 흐르는 북한강 줄기가 아스라하지만 시원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는 훗날 이 산을 떠올릴 때마다 멋진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깊고 아슬아슬한 절벽과 수백 년 풍상을 지켜온 우람한 노송,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푸르른 북한강 줄기가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절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어진 바윗길은 노송들이 절벽 아래를 감추고 있는 능선길을 조금 더 올라가자 나타났다.

“아직도 정상이 나타나지 않네, 도대체 정상은 어느 봉우리야?”
능선길을 따라 벌써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났건만 정상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일행이 답답한지 전에 이곳을 다녀간 다른 일행에게 묻는다.

“아직 두세 개 봉우리는 더 올라야 될 것 같은데, 내가 다 기억은 못하지만”
오르막 능선은 계속 바윗길이었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다시 바위 능선길이 이어지고 그 끝에 올라서자 높다란 절벽 봉우리가 나타난다. 울퉁불퉁 거칠기만 한 절벽 수직선 옆으로 명골 안쪽의 나지막한 산줄기들을 바라보노라니 섬뜩한 고도감이 밀려온다. 거대한 바위봉우리 위쪽은 전망대였다.

다시 바윗길과 전망 좋은 장소가 반복해서 나타나고 강 건너 강촌역 뒤쪽의 검봉 모습이 또렷하다. 검봉은 강변역 바로 뒤에 우뚝 솟은 멋지고 우람한 바위봉우리가 아니라 그 봉우리 뒤쪽 능선에 있는 제일 높은 봉우리다.

강 건너 맞은편 산록과 북한강 강줄기, 그리고 바로 아래 펼쳐진 줄기줄기 산줄기를 바라보며 걷는 산길은 지루함을 잊게 해준다. 이렇게 열심히 바윗길을 올라가자 바위봉우리의 정점이 되는 곳에 다다랐다.

▲ 능선길 바위 면을 뒤덮은 아름다운 식물 모습

▲ 능선길 안부에서 바라본 북한강

그런데 이 봉우리 위에서 앞쪽으로 꼭대기에 커다란 소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는 봉우리 하나가 우뚝 눈앞을 막아선다. 순간적으로 아!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별로 높지 않은 이런 작은 산에 저런 크고 멋진 바위봉우리가 있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봉우리였다.

“저 봉우리가 정상 아닐까?”

그러나 이 봉우리가 등선봉 정상은 아니었다. 등선봉은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 봉우리를 내려가자 능선 곳곳에 무너진 석축들이 보인다. 옛날의 성벽이 무너진 흔적이었다.

이곳은 아주 옛날에 맥국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는데 평화롭게 국토를 지켜오다가 적의 침공을 받아 천혜의 요새인 삼악산으로 궁궐을 옮기고 적과 대치하였다고 한다. 그 후 서기 894년경 후삼국시대에 태봉을 세웠던 궁예가 말년에 왕건을 맞아 싸운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후삼국시대 궁예는 천혜의 요새에서 왜 왕건에게 패하고 말았을까?

왜(와)데기라는 곳에서 기와를 구워 궁궐을 짓고, 흥국사라는 절을 세워 나라의 재건을 기원했다고 전한다. 그 당시 산성의 중심을 이루었던 곳을 지금도 대궐 터라 고 부르며 기와를 구웠던 곳을 왜데기 또는 와데기, 말을 매어 두었던 곳을 말골, 군사들이 옷을 빨아 널었던 곳을 옷바위라 부른다고 전하고 있다.

“궁예가 이곳에 성을 쌓고 왕건과 싸웠다면 이겼어야 하는데 왜 졌을까? 지형적으로 이렇게 완벽한 천혜의 요새에서”

성벽이 있던 흔적으로 보면 지형적으로 분명히 천혜의 요새였다. 절벽과 가파른 지형의 산으로 둘러싸여 등선폭포 쪽 입구만 막아버리면 어느 곳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형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예는 망했고 왕건이 고려를 세웠으니 왕건이 이긴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좋은 요새에서 왕건을 맞아 싸웠는데 왜 졌을까? 이게 사실이라면 역사적인 의문이 될 수도 있었다.

▲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꽃피운 야생화

▲ 등선봉 정상 표지석

“전쟁이라는 게 어디 성이나 군사력만으로 되는 건가? 백성들의 마음이 중요하지, 궁예도 처음에는 백성을 위하는 군주였지만 나중에 타락해서 백성을 돌보지 않는 폭군이 되었었잖아, 그런 그가 어떻게 왕건을 이길 수 있었겠어?”

“맞아! 민심이 천심이라는데, 민심이 떠난 궁예가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어?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망하는 게 당연하지.”

“그건 그려! 그게 어디 옛 역사에서만 적용되는 거겠어? 오늘의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지, 민심을 올바로 살피지 못하는 정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데 말이야. 쩝!”

옛 역사의 흔적을 살피며 걷던 일행들은 어느새 냉엄한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이곳을 지난 뒤에도 능선길을 따라 낮은 봉우리를 넘은 후에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은 둥그렇게 융기한 원통형으로 되어 있었고 마른 나무 등걸 앞에 작은 표지석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해발 632미터, 정상에서는 골짜기 건너 삼악산이 마주바라다보였다.

정상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하산길로 나섰다. 등선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에도 무너진 옛 성벽이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다. 능선길을 벗어나자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물기까지 있는 내리막길은 매우 위험했다,

모두들 조심조심 내려왔지만 결국 한 사람이 미끄러져 엉덩이와 바짓가랑이에 황토흙칠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흙길이어서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골짜기에 내려오니 전날 비가 내린 때문인지 흐르는 물이 많고 맑았다.

“자, 여기서 정상주 한 잔 하지?”

위험할 것 같아 정상에서 점심을 먹을 때 꺼내지 않은 정상주가 생각난 일행이 복분자 술병을 내 놓으란다. 바지 엉덩이와 바짓가랑이에 떡칠을 한 흙도 물로 씻어 내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등선폭포 바위협곡은 여전히 멋진 모습이었다.

▲ 등선봉 정상 부근의 옛 성벽 흔적

“등선봉이 삼악산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스릴 있고 멋진 산이야” 산을 내려와 일행들이 한 말이다. 삼악산의 한 봉우리에 불과한 줄 알았던 등선봉은 정말 아름답고 멋진 산이었다.

등선봉은 경춘선 열차와 버스를 이용하여 1시간 30분 거리에 있어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능선에는 산행시작에서 내려올 때까지 크고 작은 5개 정도의 봉우리가 솟아 있었다. 산행 중에는 굽이쳐 흐르는 북한강과 오고가는 경춘선 열차를 바라볼 수 있어 더 없이 멋진 등산로를 갖고 있었다. 산행시간은 3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