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18. 11:35ㆍ가인풍수지리·음택과양택
조선시대] 왕의 죽음과 장례
조선시대에는 왕이 죽는것을 훙(薨)이라 했는데, 이는 중국 황제의 죽음을 이르는 붕(崩)에 비해 한급수 낮은 용어이다. 당시엔 조선이 중국의 조공국이었기에 사대정책의 일환으로 붕을 쓰지 않고 훙을 쓴 것이다.
왕이 죽으면 조정의 모든 대신들은 국장 준비에 참여 한다. 국장을 치르기 위해서 국장도감, 빈전도감, 산릉도감 등이 설치되고 대신들은 각 도감의 일원이 되어 장례를 진행한다.
국장도감은 국상 당일에 조직되어 장례 뒤 혼전에 반우(返虞:반혼이라고도 하며, 장사뒤 신주를 집에 모셔 오는 일)하여 우제(虞祭:삼우(초우,재우,삼우)를 총괄하는 이름)가 끝날때까지 약 5개월간 존속되는 임시기구이다.국장도감은 이 기간동안에 상례와 장례에따르는 모든 의전과 재정, 시설, 문서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국정도감은 도청과 3방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는 분장설사와 분장흥고, 지적소, 우주소, 별공작소 등이 부설되어 장의 업무를 분담한다.
도청은 의전의 집행과 전체업무를 지휘하는 총괄 본부이며, 1방은 상여와주렴, 평상등의 제작을 맡고, 2방은 각종 의장과 그릇을 준비하며, 3방은 애책문과 만장등 문한(文翰)에 관한 업무를 맡는다. 또 분전설사와 분장흥소는 시설과 재정의 업무를 담당한다.
국정도감의 정규 관원은 총호사로 지칭된 도제조 1인, 예조판서 호조판서, 선공감제조 등으로 구성된 제조4인, 3품이나 4품으로 된 도청 4인, 4품에서 6품으로 구성된 낭청 6인, 감조관 6인 등이다. 이외에도 독책관, 독보관, 상시책보관 등을 합쳐 50여명이 배치된다.
빈전도감은 장례일까지의 염습, 성빈, 성복 등 빈전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는 기구이다. 빈전이란, 빈소에 대한 높임 말로서 상중에 왕이나 왕비의 신주와 혼백을 묘셔 주는 곳으로 빈전도감은 이에 관한 일을 본다.
산릉도감은 현궁과 정자각, 비각, 재실 등 봉분 조성과 부대 시설에 관한 일들을 맡는다. 능을 조성하고 그 주변 부설물들을 만드는 기간은 대개 5개월 정도 걸렸는데 적게는 6천명에서 많게는 1만명까지 능역에 동원된다. 산릉도감은 이 인원을 모두 관리, 감독하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
이 기간동안 왕의 시신은 관에 안치한 뒤 빈전에다 가매장 하였다. 빈전안에서는 죽은 왕과 가장가까운 왕족이 지키며 문상을 받고 선왕을 모셨던 궁녀가 밖에서 지키며 심부름을 했다. 또 왕위를 계승한 차기왕은 왕비와 함께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며 곡을 했다.
능지는 상지관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택하고 능은 좌향으로하고 능의 뒤쪽은 반드시 산이 있어야 한다. 또 송림을 배경으로 해야 하며 동, 서, 북, 삼면으로 곡장(曲墻:무덤뒤에 둘러 싼 나지막한 토담)을 두르고 곡장 안에 봉분을 조성한다.
봉분 아래쪽으로는 12방위를 담당하는 십이지신상을 해당 방위에
맞게 양각한 병풍석을 둘렀는데 이는 외침으로부터 왕을 보호하는 의미였다. 그 이외에도 여러 석물이 조성되는데 우선 봉분 주위를 보호하는 난간석이 있고 그 바깥쪽으로는 석호 네 기와 석양 네 기가 밖을 향한채 봉분을 호위하는 모습으로 세워진다.
봉분바로 앞에는 혼유석이 마련되고 혼유석 아래에는 귀면(鬼面)모양을 한 고석(鼓石)이 떠 바친다. 혼유석 좌우에는 망주석 한쌍을 세우고 망주석 아래에는 장명등을 설치한다. 또 장명등 좌우에는 문인석 한 쌍이 망을 대동한채 시립하고 그 밑으로 무인석 한쌍이 역시 석마와 함께시립한다. 봉분에서 문인석까지는 거의 평지인데반해 무인석에서 정자각까지는 심하게 경사가 진다. 이를 사초지(莎草地)라 하며 그 끝 부분이 정자각에 들어선다.
정(丁)자 모양을 한 정자각은 제향을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정자각 뒤쪽에는 제향후에 축문을 태워 뭍는 방형의 석함이 있다. 정자각 앞면에는 참도(參道)가 조성되는데 그것이 시작되는 부분에 홍살문이 세워진다. 홍살문 안쪽에는 배위가있고 홍살문 밖에는 금천교(禁川橋)가 있다. 홍살문밖 능역에는 재실이 있고 능 참봉(능관리인)이 이곳에 산다.
조선초에는 신도비를 세워 왕의 업적을 새겼는데 뭉종이후에는 신도비를 세우지 않았다.
왕의 시신이 매장된 뒤에는 위패를 혼전에 모시는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나면 종묘에 옮겨 모신다.
***[조선의 왕실과 외척 (박영규 지음) 중에서]
* 능에서 알아 두어야 할 일과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일.
능침과 정자각에서는 절대로 배(절)을 해서는 안 되며 배를 할
경우에는 정자각 아래쪽 잔듸밭에서 4배를 하여야 한다.
종묘에서도 상월대위에서 절대로 절해서는 안돤다.
능침과 정자각 사이 그리고 능침과 능침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로(神路)가 있는데
흑으로 덮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게 도로의 인도처럼
되어있다.
이러한 것을 볼 수 있는 곳은 동구릉 내 목릉(선조대왕릉)에서는
뚜렷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능 조성 당시 보이게 만든 것이 아니고 얼마전 장마가 있을때 신로위의 흑이 쓸려 내려 갔기 때문이다.
이곳 목릉에서는 선조대왕릉과 의인왕후 박씨, 그리고 인목왕후 김씨능이 모두 신로로 연결되어 있으니 우리 조상들의 죽어서의 사후세계에 신이 있음을 엿 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왕의 시신을 매장할 때는 사가에서처럼 땅을 파서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봉분 및 부속물 등을 모두 완성한 뒤 관을 밀어 넣는다
혼유석 밑에는 봉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혼유석이란, 혼께서 나와 노시는 곳으로 일종의 사가에서의 상석
같은 부분이라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사가묘소의 상석 뒤에는 조그만 혼유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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