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21. 21:12ㆍ고증·참역사연구
한반도에서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잊어선 안될것이다.
어찌 잊을수가 있으랴..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 한번 되세겨 보자. 눈을 차마 뜨고 못볼 사진은 제외 시켰지만..
그래도 역시 눈뜨고 못 볼 사진들이다.
투쟁을 벌이다가 집단학살된 유해들 잔혹한 행위로 소리없이 죽은 영혼은 무엇으로 위로할 것인가? 사진을 올리며 잔혹한 장면이 많아 사진선명도를 조절했습니다.
일본군들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을 말살하기로 한것이다. 어린아이들 까지 죽여 불태워 졌다.
국제 여론을 의식한 듯 온갖수단을 자행한 흔적들 사진속에는 피할수가 없었다.
반공호 에 숨어 있던 민간인들을 무차별 처형했다. 엄마 품에서 죽은 아이들이 인형 처럼 보인다 여성들은 하체가 벗겨지고 심하게 피를 흘리고 있다 이장면은 전쟁이 아니라 차라리 자연 재앙으로 설명을 달고 싶다.
일본 점령 군인들은 민간인을 학살하여 감시하고 있다.
죽음을 확인하기위해 긴창으로 다시 시신을 찔러 본다.
총검으로 처형하기 위해 담장 쪽으로 몰고가고 있다. 이미 총검에는 선혈이 묻어 있다.
체포된 포로 결국 처형된다. 칼로 목을 칠 때 넘어 가지 않도록 팔을묶고 뒤에서 당기고 있다.
일본인 칼에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다.
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비참한 생을 마친다. 목을 짤라 철망위에 올려놓고 입에 담배 까지 물게한 비인간적인 행위를 자행했었다.
개를 풀어 인간 사냥을 하는 모습이다. 결국 총살로 생을 마친다.
항일군 간부 처형 장면이다. 목을 치기전 뒷편 일본군이 웃는 모습을 볼 때 분노보다 일본의 양심과 목적을 혼돈하게 한다.
항일병을 수색하여 작두로 목을 짤라 공중 높이 매달아 놓았다. 추운 겨울 날씨로 오랫동안 매달아 경각심을 주기위해 인간이 할수 없는 최악의 형벌을 자행 했었다.
죽은시신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화장을 시켰다. 온 마을이 유해로 가득하고 일본의 원폭 피해처럼 보인다.
손을 뒤로 묶고 물에 수장하는 처형. 처형이라기 보다 학살이라고 하는게 맞을거 같습니다.
일본 토벌군인 들은 사정없이 민간인 까지 처형 했다. 떨어진 목을 손에 쥐고 미소까지 보이는 것은 사람 목숨을 장난삼아 학살하는 것을 증인 할수 있는 장면이다.
일본인 들은 포로가 된 민간인 과 항일군을 사정없이 목을 자르고 담장 밑에 상품처럼 진열하고 있고 한결같이 한을 품고 눈을 감고 있다.
생매장 되어지고 있는 양민들 이렇게 돌아가신 분들의 마음은 누구도 모를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양민의 표정에서 일본인의 잔혹한 흔적을 엿볼수 있다.
일본군 위사 간부가 세균 생체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마취도 없이 손을묶고 해부하고 있다, 복부에 창자와 내용물이 나오고 일본인들은 입 마스크하여 지켜 보고 있다.
일본군들이 처형하기전 목에 수건을 감아놓은것은 칼이 목을 치기전 잘린 몸통에서 품어 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수건을 얹어 놓은 것입니다.
손을 뒤로 묶고 칼로 살육하는 장면 |
지독한 고문. 하의가 벗겨지고 혹독한 고문뒤 결국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나무 벌목 과 혹독한 노역을 시키고 난뒤 결국 모두 처형되었다.
총검으로 심장을 찌르는 현장 |
잔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 (처형하는 순간) |
칼이 지나가 목이 잘린상태 |
처형후 두병사의 자랑스런 자세로 기념찰영 |
죽음을 기다리는 양민들 일본인 감시아래 손이 뒤로 묶여져 있다.
생매장된 양민들 가족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는 장면이다.
죽은사람의 표정에서 일본인의 잔혹한 흔적을 엿볼수 있다.
처형을 기다리는 소년.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잔악 무도한 일본군들이 대량 학살 하고난뒤 처참한 광경.
고랑에 즐비한 시체들중에 뒤에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과 다른 사람들이 가족의 시신을 찾기위해 살펴보고 있는중.
잔혹한 살육 (1942)
옷이 벗겨진 여인은 온몸이 상처 투성이다. 목은 짤라져 있고 얼굴 모습은 등뒤로 돌려 져있다.
강간후 총으로 치부에 발포 장면. 엉덩이에 총상 구멍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성의 음부를 본인(일본군)이 가려 좔영 하였다. 더 이상 해설이 필요 없는 사진이다.
한국 여인들을 찾으러 다니는 일본군들. 눈에 띄는 여성은 모두 끌고가 강간후 살해했다.
이런 여성보급을 당담하는 일본군을 항상 여러명의 한국여성을 데리고 다녔다.
수장된 시신들. 손을 뒤로 묶고 저수지에 수장시켰다.
살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 에게는 긴막대기로 물속으로 밀어넣었다
집단 학살. 무차별 학살된 상해 시민포로가 되어 이곳으로 몰아 넣고 사살한뒤 불 태웠다.
허탈한 아버지 (1937년)
죽은 자식시신을 물건처럼 들고 있을 만큼 어이가 없는 학살 이였다..
일본의 발악. 여성의옷을 벗기고 마구 살육당 했던 참혹한 현장. 모래사장에 뒹굴고 있는 시신들 일본이 1943년 일본군 후퇴하면서 자행 된 흔적들이다.
포로 집결장. 일본인에 체포 되어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손을 뒤로 묶인채 소리 없이 침묵하고 있다 1928년 이때부터 살육의 실습은 강도를 높인다.
죽이는 방법 시범 실습((1938년) 강변에서 총검으로 살육하는 실습 장면이다.
이런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동원된 일본군인들 은 관심 깊게 보고 있다.
살이 떨리는 공포. 두사람의 양민이 포로가 되어 일본인에게 두손 모아 애원하는 모습이 보이고 일본군은 무엇인가 소리 치고 있다.
산더미 같은 시체. 여성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하체에선 선혈이 흘러 나오고 있다.
집단 학살. 가슴에는 죄명아닌 죄명을 달아놓고 사살했다. 얼굴의 선혈을 보아 총살이다.
이성 잃은 일본군. 일본군은 여성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장난하고 있다.
전쟁과 관계 없는 일이다 일본의 숨은 근성을 엿볼 수가 있다.
부녀자 강간. 일본 병사의 손을잡고 애원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젖가슴이 드러나고 반항을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난이다
수장된 시신. 손을 뒤로 묶고 못에 수장을 시켰다. 막대기는 위에서 누르고 있다.
살기 위해 얼마나 바둥 거렸는지 짐작이 간다.
갓난 아기의 죽음. 인형처럼 뒹굴고 있는 아이들의 시체.
일본 인들은 전쟁으로 이성을 상실 했다.
너무나도 당당한 살인. 잡아온 양민들을 표적 삼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부녀자 집단사살. 엄마와 함께 도피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흐르는 선혈이 계단을 적시고 있다.
집단 사살 현장. 오른쪽 일본군이 죽은 시체를 확인하고 있다.
부녀자 절규. 하체를 강압에 의해....(차마 설명 할수 없음) 손에 실반지가보인다.
단란했던 가정을 등지고 결국 정신대로 갈것이다 여성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한숨 뿐이다.
작두로 처형직전. 작두로 목이 곧 짤러 질것이다.
작두로 목을 짜르고 있다. 작두 앞에 잘려진 목이 하나 보인다.
작두로 수없이 잘려간 양민들의 모습. 일본군이 장난 삼아 목이 잘린 시체의 손을 자신의 잘린 목부분을 가르키게 해놨다. 저런 끔직한 일은 일본군에겐 단지 장난에 불과했다.
근심이 가득한 한국여성. 일본군 위문품을 강제로 하는수 없이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 강제 노동을 하면서 일본군의 노리게로 끌려 갔다.
일본 관동대학살 (1923년)
1923년 일본 관동일원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0여만명이 사망 했다. 민심이 극에 달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인 폭동설을 조작유포시켜 한국교포 약 5천명이 피살되었다(몽둥이,죽창 으로 학살)
창고에서 독살. 엄청난 시체가 당시 혹독한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노역자가 운송을 마치면 죽음 이다.
부릴때로 부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장소와 때를 불문하고 이렇게 죽였다.
3명의 의병 총살 현장.
영국여행가 비숍 씨가 촬영한 것이다. 영국왕립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
서대문 형무소뒤 야산 공동 묘지에서 독립 의병 3사람이 총살 당하는 모습
위에 사진은 길거리에서 한국여성이 일본군에게 강간당한후 구타로 인해 배가 터져 내장이 나온 모습이다. 밑에는 일본군이 한국여성을 강간하기전 바지를 벗겨놓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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