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2010. 2. 26. 09:59고증·참역사연구

삼일절

 

 

재미난 이두연구 제 7 장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 다른 민족의 다른 나라인가아직도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가 가르치는 우리역사?

 

이 글도 역시 평양 출판사간 한국문화사 영인 북한 어문사학자 김수경의 [고구려, 백제, 신라 언어연구]를 그대로 영인 하듯 쓰고 글쓴이의 의견을 달았다.

 

이 글의 대략적 취지는 지금 이남의 리기문(李基文)교수, 김완진(金完鎭)교수 등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완전 다른 말을 쓰는 다른 민족이었다는 것이며 이숭령(李崇寧)교수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어라는 것은 이미 그것이 방언의 종별을 나타내는 것으로 결코 외국어의 관계가 아님을 알아야 한 다 면서도 삼국어가 같다는 어떤 뚜렷한 증거는 제시 하지 못하고 있다.

 

1. 이기문(李基文) 서울대 명예교수.

...오늘의 국어가 단일어임으로 고대에 있어서도 고구려 백제신라의 언어가 단일 했으리라는 선입견에 지배 되어온 것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비판 되지 않으면 안 된다.(국어사 개설 1961년 초판, 개정판 1972년 서울 32 페지)

 

...우리 나라에 있어서의 언어의 단일성은 통일 신라 이후에 성취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어 형성사 서울 1967. 75 페지)

 

...종래 우리 학자들은 현대, 또는 중세 조선어가 단일 언어라는 사실에서 고대의 신라, 백제, 고구려의 언어도 단일 했으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령 고구려 인명 및 지명을 면밀히 조사해보면 우리는 그것이 신라어와는 다른 언어였다는 결론에 도달 하게 된다. 필자는 10 여 년간 고구려 자료를 연구한 결과 자못 흥미 있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는 위에서 말 한 바와 같이 고구려어는 신라어와는 다른 언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비록 다른 언어 이기는 하지만 고구려어는 신라어와 상당히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말의 조상 ‘ 월간중앙’ 1973 년 3 호 234 페지)

 

2. 김완진(金完鎭)서울대 명예교수

한국어 발달사(음운사)의 저자 김완진 교수는 “이제는 삼국시대 국가의 언어가 서로가 상당한 차이를 가진 다른 말로써, 방언들이 아닌 다른 언어들 이었다는 것으로 상정하는 일이 일반화 되었거니와...” (한국문화사대계 V.159 페지)

 

3. 이숭령(李崇寧) 서울대, 한양대 명예교수

이숭령 교수는 한국 방언사에서 [고대 국어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어 라는 것은 이미 그것이 방언의 종별을 나타내는 것으로 결코 외국어의 관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한국 문화사 대계 V 345 페지)

 

...백제어에 대하여...고구려와 동일한 언어라기보다는 피차 가까운 언어라고 보아야 한다.

 

...백제는 본시 남방계인 마한 어에, 남하하여 세력을 잡은 부여계의 언어가 우세하였으나 마한 어와의 사이에 언어 투쟁으로 혼효와 수정이 나타났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리숭령 한국방언사, 한국 문화사대계 V 347 페지)

 

4. 글쓴이 구길수 분석

이상을 보면 이기문 교수는 가설이라 정해놓고 고구려 신라 말이 다른 말 이라 했으나 김완진 교수는 이를 확정해 놓고 삼국 어는 완전 다른 말이라는 것이니 그렇다면 삼국은 완전 이민족이 살았던 것이 되고 이런 주장이 일반화 되었다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했는가? 그 근원은 일제 식민사학으로 올라간다.

 

일본의 역사학자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는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말 했다.

“ 고대 조선에서 남북으로 민족이 달랐으며 언어 지명도 달랐었다.”

이것을 최초로 지적한 사람은 쯔보이 구마조(坪井九馬三) 박사였다. (고대조선의 문화경역- 조선학보 제 24집. 48페지.)

 

결국 위 삼국은 다른 민족이었다는 학자들은 일제 식민학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 같으니 이는 이병도 뿐 아니라 지금까지 그 식민사학의 교육을 받은 교수들이 계속해서 그들 식민사학을 전할 것이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삼국사기를 인용, 삼국 말이 달랐다는 주장의 근거이나 이 이두를 자세히 풀어 위 식민사학에게 논리적으로 대처한 글을 글쓴이는 아직 읽지 못했다.

따라서 글쓴이는 이 삼국시대 이두를 논리적으로 풀어 위 식민사관 교수들의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밝히 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말을 찾아 볼 수 있는 기록은 오직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이고 그것도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이며 그 자료가 너무 부족하나 이것은 대개 이두로 써져 있음으로 이두로 풀어 보면 당시 사회상과 당시 말을 대강 짐작해 삼국 말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삼국의 수 많은 지명중 고구려에서는 벌판이라는 '벌'을 '忽 > 怱 '이라 했고 백제에서는 '夫里'라 했으며 신라에서는 '火'라 했다. 따라서 고구려, 백제, 신라말이 다 다른것 같지만 그 이두로된 한자말을 우리 말로 해석해보변면 다 같은 '벌' 이 된다. 따라서 우리 대학 교수들은 이런 해석은 해 볼 생각지도 않고 삼국사기 글자가 다르다 해서 위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가 가르쳐 준대로 우리 삼국은 각각 다른 민족이었다는 말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그 제자들은 다시 교수가 되서 다시 그런식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 하고 있으니 참으로 식민사학의 피해는 우리 역사의 시원을 삼국 이후로 끌어 내리고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