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실생활의 작은 재난에도 쏠쏠히 유용한 첨단 구호용품선

2009. 11. 29. 09:46자유자재·멋대로

로빈슨 크루소가 이걸 알았더라면

 

커버스토리 실생활의 작은 재난에도 쏠쏠히 유용한 첨단 구호용품선

그저 만일의 사태만을 염두에 두고 미리미리 재난대비 용품들을 개비하기란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다. 남들에게 괜한 강박증으로 오해받는 것도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래의 제품들은 서랍장 어느 귀퉁이에 처박아 두고 유용하게 쓰일 운명의 그날을 기다릴 필요 없이, 실생활에서도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몇몇 제품의 스마트한 속성들은 주위 사람들이 당신을 센스쟁이로 우러러보게 만들 수도 있다. 가격대도 적절한 필수 재난구호 아이템들을 골라 보았다. 대부분의 제품은 일반적인 인터넷 쇼핑몰에서 검색·구입할 수 있다.

1분만 돌리면 2시간 청취 가능
자가발전 손전등 겸 라디오 |


최근 모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가수 이현우와 배우 박진희는 북극곰에게 사과의 뜻을 표하기 위해 1주일간 밤마다 전기를 끄고 양초를 켠 채 생활했다. 하지만 전기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북극곰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손으로 직접 전기를 만들어 불을 켜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자가발전 손전등이 그것. 게다가 (의미 없는 트집이긴 하나) 양초를 연소할 때도 미약하게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완전 충전을 위해서는 10분 넘게 발전기를 돌려야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현대인의 운동 부족을 벌충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다만 1분만 제대로 돌려도 약 10분간 엘이디(LED) 전구(5구)의 불을 켜고 2시간가량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교류(AC) 어댑터와 차량용 시거잭으로도 충전 가능. 가정용 대형 손전등에 견주어서는 밝기가 약한 편이나 조명의 각을 조절하여 고정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오토스캔이 가능한 에프엠(FM) 라디오의 감도는 매우 뛰어난 편이어서, 가끔은 집 안의 모든 전기를 끈 채 손전등의 불빛으로 책을 읽거나 신동과 김신영이 진행하는 < 심심타파 > 를 들으며 밤의 운치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휴대전화 충전 기능과 24핀 잭도 내장되어 있지만 추천할 만하지는 않다. 값 3만3000원.

1박2일 물에 잠겨도 거뜬한 점화
마그네슘 발화기 |


< 로빈슨 크루소 > 건 < 캐스트 어웨이 > 건, 무인도에 낙오된 이의 생존기는 모두 불을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듯, 마른 나무의 마찰열로 불을 지피는 것은 참으로 쉬운 작업이 아니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여행 때 라이터를 잔뜩 챙겨 간다고 해도 젖어 버리면 말짱 도루묵. 마그네슘 발화기는 이러한 조난 상황을 대비한 최상의 아이템이다. 마그네슘 봉을 갈아서 가루로 만든 뒤, 반대편의 점화 뭉치를 쳐서 불꽃을 일으키면 순식간에 모닥불을 피울 수 있다. 1박2일간 물에 담가 놔도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휴대전화나 열쇠고리에 달 수 있는 홀더가 있어 소지도 간편하다.

무인도에 조난이라니, 너무 먼 얘기라고? 당신이 애연가라면 다른 문제다. 돼지비계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김치찌개로 거하게 식사를 마쳤다. 이제 '식후 땡'의 시간. 하지만 불이 없다. 평소에는 발에 차이던 라이터들도 하나 보이지 않고 주위에 담배를 피우는 이조차 없다면? 이처럼 한시가 급한 악몽 같은 순간에 마그네슘 발화기는 프로메테우스환희를 선사할 것이다. 단 주위에 불이 옮겨붙을 물건들은 없는지 미리 잘 살피도록 하자. 값 1만원.

내일 종말이 와도 포기할 수 없는 밥 한끼
이머전시 레이션, 자동발열 고추장 비빔밥 3종 |


나라에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신문과 방송을 장식할 때마다 귀퉁이에 꼭 따라붙는 뉴스가 있다. 바로 라면 사재기. 그만큼 라면은 한국인들에게 비상식량의 대명사와도 같다. 하지만 가스와 식수 공급도 중단되고, 그 흔한 버너조차 집에 없다면 라면은 무용지물이다. 비상식량이라면 모름지기 조리기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독자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비상식량은 데이트렉스사의 '이머전시 레이션'. 각종 곡물과 견과류를 압축한 바(bar) 형태의 이 제품은 작은 크기임에도 개당 200㎉의 고열량을 자랑한다. 2개로 한 끼 식사분의 칼로리 섭취가 가능하며 생각보다 텁텁하지 않아 물을 켜게 만들지도 않는다. 맛도 쿠키처럼 고소하여 밥을 챙겨 먹기가 극도로 귀찮거나 여유가 없을 때 식사 대용으로 섭취해 볼 만하다. 3일치 18개에 2만3000원. 보존 기간은 무려 5년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꼭 한 공기 밥을 먹어야겠다면 동결건조 비빔밥 3종 세트를 쟁여 두자. 대한민국 국군의 바로 그 전투식량을 상품화한 이 제품의 핵심은 불 없이도 물을 끓일 수 있는 발열팩. 더운물이 없을 때 찬물을 동결건조 밥에 붓고 발열체를 붙여 두면 20분 만에 밥으로 완성된다. 거기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비면 비빔밥 완성. 된장국까지 곁들여져 있으니 비상식량치고는 나름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쇠고기, 김치, 야채의 세 가지 맛이 출시되어 있다. 1개당 가격 5000원.

살충제 옆에는 두지 마세요
친환경 미생물 액체소화기 |


고립된 이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불이지만, 인간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 또한 불이다. 말하자면 불은 재난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셈. 초등학교 미술시간 포스터 그리기 수업부터 마감 뉴스마저 끝난 심야 공중파 방송의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귀에 남한산성이 쌓일 만큼 듣는 단어가 '불조심'이건만 현실적인 예방책을 마련해 둔 가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마루나 부엌 한구석에 빨간색 소화기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집 안의 인테리어답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스프레이 타입의 친환경 미생물 액체소화기라면 부담이 없다.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튀김에 도전한답시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잔뜩 두르고 가스레인지를 켰다가 불이 붙은 경우, 담뱃불이 미처 다 꺼지지 않았다는 것도 모른 채 휴지통에 버렸다가 뚜껑 틈새로 모락모락 검은 연기가 피어날 경우에도 3~4m 거리에서 진화가 가능한 이 미니 소화기는 우왕좌왕하다 대형 화재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을 확실히 줄여줄 것이다. 유류 화재, 전기 화재 모두에 살포할 수 있으며, 차량용 거치대까지 제공하니 여름철 보닛 과열로 인한 화재 위험에도 손쉽게 대비할 수 있다. 보관이 간편하나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살충제 등 다른 가연성 스프레이들과 함께 두지는 말자. 결정적인 순간에 헷갈렸다간 패가망신이다. 값 1만3000원.

최종의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보루
접이식 종이 양변기 |


실은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재난 상황을 떠올릴 때 우리는 배설의 애로에 대해 거의 고민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재난영화에서도 이 민감한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 사례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당장 수도 공급이 중단된다고 상상해 보자. 식수야 어떻게든 충당한다 해도 일제히 멈춰 버린 변기의 수세식 시스템 앞에서는 그저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극단적인 위기상황까지 갈 필요도 없다. 추석·설날 귀성길의 도로 위, 정체는 몇 시간째 이어지고 인근에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변이 있나. 주섬주섬 페트병을 꺼내 보지만, 생리적 욕구 중에는 페트병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그 무언가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골판지로 접어서 변기를 만들 수 있는 제품 '고타고'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간신히 지킬 수 있게 해 준다. 그저 걸터앉을 수 있는 틀에, 배설물을 담을 수 있는 비닐을 장착한 것일 뿐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이 수준의 대체물을 만들어 내기도 쉽지 않다. 특히 이 종이박스는 보기와 달리 125㎏의 체중까지 끄떡없이 견디며, 배설물을 담는 비닐은 흙속에 묻어두면 30일 안에 분해되는 친환경 재질이다. 휴대용 케이스와 교체용 용변비닐 8장을 포함한 1세트 가격 1만9900원.

흙탕물·배설물 웅덩이도 두렵지 않다
휴대용 정수기 라이프 스트로 |


이젠 불이 아니라 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용품들이 야외와 가정 모두에서 사용 가능한 것들이었다면 이 휴대용 정수기는 야생에 특화된 상품이다. 별도의 전원이나 필터 교체 없이 약 700ℓ의 물(인간이 1년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양)을 정수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발명품은 99.9999%의 박테리아와 98.5%의 바이러스를 걸러낸다. 흙탕물은 물론이요, 심지어 동물의 배설물로 가득한 웅덩이 물까지도 정수할 수 있다. 식수난으로 곤란을 겪는 아프리카와 중국의 난민들을 위해 개발되었으며, 제3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어린이들이 오염된 물을 마실 때 사용하던 바로 그 제품이다.

야외 활동이 잦은 이라면 외딴곳에서 식수난에 봉착했을 때 매우 유용하다. 등산하다 길을 잃었는데 계곡은 보이지 않고 바위틈에 빗물만 음침하게 고여 있다든지, 팔뚝만한 월척을 낚겠다며 저수지에서 밤을 새우는 와중에 타는 목마름을 견디기 힘들 때도 이 기적의 빨대만 있으면 식중독, 이질, 장티푸스, 살모넬라 등등에 대한 걱정 없이 빗물과 저수지 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퍼마넷(lifestrawkorea.co.kr)에서 독점 공급하며, 값은 3만9000원이다.